■ 본문 중에서
서양음악에 비해 국악에 느린 음악이 많은 이유는 뭘까요? 무엇보다 빠르기의 기준 단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에요. 서양음악은 맥박을 빠르기의 기준으로 삼지만, 국악은 호흡을 빠르기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 '국악은 다 느린가요?'에서
국악은 작곡가 중심으로 설명하기에는 그 발생 배경 자체가 완전히 다릅니다. 그런데 20세기 중반부터 김기수, 지영희, 김희조, 황병기, 이성천, 박범훈 등 국악에서도 작곡가가 출현합니다. 이들은 전통 국악에서 도출할 수 있는 장단, 악조, 악기 편성 등의 음악 요소들을 활용하여 오선보에 서양식 작곡 기법으로 곡을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로 국악 관현악, 실내악, 협주곡, 독주곡 등 다양한 장르의 새로운 국악이 출현했지요.
- '일상 속 국악 장르'에서
세종대왕이 절대 음감의 소유자라는 것은 편경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밝혀집니다. 편경은 16개의 돌을 정교하게 깎아 틀에 걸어 연주하는 악기라서 조금이라도 오차가 생기게 돌을 깎으면 잘못된 음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종실록』 권59를 보면, 어명으로 편경을 제작한 박연에게 세종대왕은 국악의 열두 음 중 하나인 '이칙(夷則)'을 내는 돌 하나가 약간 높다고 지적했습니다. 알고 보니 밑그림으로 돌에 새긴 먹물이 다 갈리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박연이 세종대왕의 지적을 듣고 편경에 새긴 먹물을 다 갈았더니 정확한 '이칙' 음을 연주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 '전방위 천재 뮤지션, 세종대왕'에서
저는 중학교 시절에 3년간 대금을 전공했습니다. 여름방학이 되면 학교에서 전교생을 데리고 전공 수련회를 갔습니다. 수련회에서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괴로웠던 활동은 수백 명이 참여하는 전교생 합주였습니다. 합주 시간에는 보통 1시간 반 내외로 연주할 수 있는 <영산회상>이나 <여민락>을 연주했는데, <영산회상>은 그나마 점점 빨라지는 묘미가 있어 스릴이라도 있었지만, <여민락>은 정말 힘이 든 기억이 납니다.
- '백성과 즐기는 <여민락>에 숨은 이야기'에서
시나위와 재즈는 모두 즉흥연주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시나위에서는 연주자들이 각기 다른 선율을 동시에 연주하는데, 처음에는 불협화음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선율은 전라도 일대 고유의 음악적 특징인 육자배기토리의 음계를 중심으로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화음을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헤테로포니(다성음악의 한 종류로 하나의 선율을 기반으로 여러 악기가 자유롭게 변주를 시도하여 자연스럽게 화음이 만들어지는 형태)는 재즈에서 다양한 악기가 독립적이면서도 조화롭게 즉흥연주를 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 '시나위는 재즈와 통한다'에서
■ 여는 글
제가 국악을 전공하게 된 것은 지극히 우연이었습니다. 도시락을 매일 싸고 싶지 않다는 어머니의 회유로 급식을 주는 국악중학교로 입학한 것이 계기가 되었는데, 그렇게 30년 이상 이 전공을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국악의 'ㄱ' 자도 모르고 시작했던 국악은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지만, 낯설고 어려웠으며 때로는 지루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그리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지인들은 제 전공에 대해 신기해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도 제 전공이 여전히 신기하거든요. 하지만 이제 낯설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국악과 조금씩 친해지게 된 이야기, 국악에 대한 오해와 진실, 국악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가십, 그리고 이 음악이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주변의 사람들에게 조금은 서툴지만 친절하게 알려주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이제야 제가 조금씩 깨달은 국악을 대중이 단기속성처럼 조금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여전히 저는 '쉬운 국악'에 대해 고민 중이고, 그 고민을 담기에 저의 필력은 한참 부족하지만 그래도 진심을 담아 많은 분에게 제가 아는 한도에서 국악 이야기를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책에 담긴 특정 이야기가 친근하게 또는 깊게 와닿기를 바랍니다.
책은 크게 '국악에 대한 오해와 진실', '이 정도만 알아도 국악 마스터', '국악곡에 숨은 비밀', '알면 더 좋은 국악에 대한 몇 가지 지식'의 4부로 구성하였습니다. 먼저 1부에서는 제 주변 분들이 국악에 대해 가장 많이 물어보셨던 보편적 관념에 대해 접근하며 국악에 대한 약간의 오해, 그리고 그에 대한 진실부터 이야기하였습니다. 2부에서는 국악과 관련한 다양한 상식을 함양할 수 있는 가장 캐주얼한 내용을 담았고, 3부에서는 다양한 국악곡 또는 국악 장르를 살펴보며 각각이 가지고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매개로 친근하게 음악에 다가갈 수 있도록 시도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국악 관련 설문조사, 크로스오버 국악 이야기, 플레이리스트 추천, 그리고 마지막에 읽는 책 사용설명서로 마무리하였습니다.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주시고, 생각했던 것처럼 원고가 잘 써지지 않을 때마다 한없이 믿고 기다려주신 초봄책방 김민호 대표님과 출판사 식구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제가 이러한 콘셉트의 책을 쓰고 싶게 만든 계기가 되어준 주변의 소중한 지인들에게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항상 든든한 힘이 되어주시는 경인교육대학교 식구들, 전 직장 국립국악중・고등학교 식구들, 그리고 함께 공부했던 동학들, 여전히 사랑스런 아내 이명희, 착하고 건강하게 잘 커주고 있는 아들 이예준, 이예찬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2024년 12월
석수동 연구실에서, 이동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