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노트
나의 시는 몸의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추의 진자 운동처럼 한쪽으로 밀려난 삶은, 오히려 반대편에 있는 문학을 향한 정신적 지평을 넓혀주었다. 서정적인 언어를 찾아 이미지 함축에 집중하여 독자에게 다가서는 방법보다는 몸이 경험한 이야기를 시의 형식을 빌려 표현했다. 이런 접근은 시가 내 안에 갇히거나 서정성이 상실될 수 있는 위험을 동반하지만 이미 몸에 밴 이 길을 지속하여 걷기로 한다.
적막함과 고요함 사이에서도 자라나기를 포기하지 않는 식물처럼 늘 햇빛이 드는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내면의 움직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나는 더 이상 말랑한 시어에 감동이 되지 않고 직설적이어서 다 말라버린 단어를 살도 붙이지 않고 쓰는 것을 더 선호하게 되었지만, 누가 아무 맛도 안 나는 시를 읽겠는가. 절필을 요구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마음을 촉촉하게 해주는 단어와 냉담하고 뻣뻣하게 사실을 직시하는 단어 사이에서 서성거렸다. 경계인이 된 나는 적막하게 마른 뼈에 잘 빨아 말린 옷을 입혀 밖으로 나가라고 등을 떠민다.
이 시집은 4부로 나누어 내면의 변화를 느리고 직설적인 어투로 말하고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4편의 시가 분화되어 51편의 시로 구체화한 듯하다. 현재 내 안에 흐르고 있는 열정과 냉정함을 섞어놓은 보라색 라벤더 향이 있는 시편들을 1부에 앉히고, 그 뒤로 현재가 있기까지 지나왔던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근원적 이유에서부터 사회적 이유로 나아가며 배치했다. 시인의 산문을 읽으면서 시가 담겨 있는 페이지를 찾아 들어가면 시를 좀 더 밀도 있게 느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중략)
몸, 관계, 기억, 사회를 통과한 시선은 다시 창작의 문제로 되돌아온다. 추의 진자 운동처럼 한쪽 끝까지 밀려났다가 되돌아오는 힘, 그 반복 속에서 감각을 정제시키고 언어를 세공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표현 방법의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존재를 재구성하는 행위에 가깝다. 가장 작은 감각에서 출발한 사유는 점차 외연을 넓혀 별과 빛, 그리고 근원에 관한 질문으로 나아가며 우주적 상상력으로 확장할 수 있는 문장을 곳곳에 접목했다. 시집의 제목인 ‘마른 우물에 부는 화을바람’은 이러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압축한다. 마른 우물은 고갈된 기억과 감정, 혹은 비어 있는 내면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흔적의 공간이기도 하다. 몸에 남은 감각, 관계가 지나간 자리, 기억이 되살아나는 순간, 그리고 언어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까지 멈추지 않는 흐름을 기록한 것이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끝과 소멸의 방향에서 불어오는 움직임이며, 사라진 것들이 다시 돌아오는 경로를 암시한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이 바람은 비어 있는 곳에서도 계속해서 무언가를 흔들고 움직이게 하여 허무한 들판 위에서 생을 활기차게 끌고 갈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