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 전화는 끊겼다. 소원은 화가 났다. 말씀 한번 듣는 것이 뭐 그리 힘든 일이라고. 나라고 좋아서 매주 교회에 가느냐고. 엄마가 울고 있지 않느냐고. 너 하나 때문에 가족 신앙을 못 꾸리는 우리 가족이 짠하지 않으냐고. 다 함께 천국에 가는데 너 혼자만 지옥 불에서 타들어 갈 거냐고. 따지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해은은 그 뒤로 전화를 받지 않았다. 혼절하다시피 하는 엄마를 챙겨야 하는 건 소원밖에 없었다. 뜨거운 엄마는 차가운 물로도 빨리 사그라지지 않았다. 찬 물을 들이킨 것은 엄마지만 왜인지 자꾸만 손끝이 춥게 구부려지며 떨리는 것은 소원이었다. 소원은 자라면 자랄수록 내 종교와 부모님의 종교에 의구심이 생겼다. 그러나 그를 입 밖에 내서는 안 됐다. 입 밖에 내는 순간 나는 이단아가 될 것이고, 엄마는 졸도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원은 애써 생각했다. 믿지 않아도 좋으니 보험으로라도, 좀 들어두자고. 해례교가 진실이라면 나는 천국으로 갈 것이고, 거짓이라면 그냥 죽어서 끝나는 것 아니겠는가.
- CHAPTER 01 순수한 증인 - 중에서
“미안해 해은아. 사실 나 해례교야.”
“어?”
‘삐-’ 해은의 귀로 이명이 들려왔다. 새로 연이 닿은 이후로 2년가량을 친하게 지내왔던 친구의 고백이었다.
“그래도 이것만은 알아줬으면 좋겠어. 처음에 너네 언니랑 어머니 부탁받고 접근한 건 맞는데 너랑 계속 이야기하고 지내면서 해은이 너한테 진짜 항상 진심이었고 즐거웠어. 진짜야.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도 이젠 너한테 솔직해지고 싶어서,”
“너 성당 다니던 거 아니었어? 언제부터야 대체..?”
“...어렸을 때 혼자 성당 다녔던 것도 맞고, 성당 다닐 때 해은이 너 알게 된 것도 맞아. 다 맞는데, 너 언젠가부터 그 교회 안 나가기 시작하고부터 거기서 몇 번 너 기다렸었어.”
“...”
“그러다가 너네 교회 분들이랑 가족분들도 뵙게 됐고 거기 말씀도 듣고 하면서 계속 다니게 됐어.”
“그게 무슨...”
해은의 심장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그 애가 자신을 붙잡아준다고 믿었던 순간들. 사실은 자신을 다시 그 세계로 끌어당기기 위한 기다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 비록 처음 의도가 그런 거였어도 나는 해은이 너 만나는 거 진짜 좋았어. 계속 만나고 놀면서 진짜 친구 같았고, 어 그래서 많이 늦은 것 같지만 지금이라도 말하는 거야. 미안해 해은아. 그래도 나는 해은이 너랑 계속 지금처럼 잘 지내고 싶어”
- CHAPTER 03 해례님의 은혜 - 중에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기억을 긁으며 부스럼을 일으킨다. 기도문. 밑줄. 멍청한 내 글씨. 소원은 노트를 덮는다. 버리지도, 다시 숨기지도 않는다. 그냥 들고 서 있다. 벽면에 자국만 남긴 채 사라진 예전 교회 액자의 흔적도. 한 손에 들어오던 작은 성경도. 의미를 잃었다. 소원은 천천히 침대에 앉는다. 침대 매트리스가 몸무게를 받아낸다. 면의 감촉. 조금 해졌다. 어릴 때 해은이와 함께 쓰던 이불이다. 그때는 이불을 더 당기는 쪽이 늘 해은이었다. 소원은 처음으로 이불을 당기지 않는다. 그냥 가만히 손을 얹어둔다. 가슴이 아프다기보단 텅 빈 느낌. 그 공백 속에서 묵혀왔던 단어가 천천히 떠오른다. 동생. 소원은 그 단어를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대신 이불을 조금 더 정리한다. 접힌 자리를 맞추고 끝을 가지런히 한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도. 소원을 그걸 보며 생각한다. 놓아두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그리고 그게 오늘 하루에 허락된 전부라는 걸 조용히 받아들인다.
- CHAPTER 04 도망친 선지자 -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