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윤숙 시인은 에네르게이아(energeia)의 시어들을 통해 인간 가치를 추구하는 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인유나 반어 등의 비유와 상상력을 통해 작품의 구체성과 아울러 환기력을 획득한다. 창조적인 시어의 변주로써 이 세계의 부분과 전체를 연결해 세계 속에 존재하는 그 자신은 물론 공동체의 가치를 심화시키는 것이다. 작품 속의 시어들은 죽어 있는 기계처럼 정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부단하게 움직이며 그 역할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활동을 두 가지로 분류했다. 하나는 교본과 경험을 통해 습득된 기술을 토대로 동일한 종류의 대상들을 만들어내는 활동이다. 어떤 것을 만들어내는 생산적인 행위로 디나미스(dynamis)에 해당된다. 또 다른 활동은 이미 주어져 있는 기술을 토대로 하지 않는 창조적인 것이다. 디나미스보다 선행하는 행위로 에네르게이아에 해당된다. 디나미스는 힘뿐만 아니라 잠재성을 의미하므로 에네르게이아와 대립한다. 잠재성과 실재성은 곧 존재론적 가능성과 실제적인 작용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에네르게이아를 디나미스보다, 즉 활동을 가능성보다 중요하게 인식했다. 가능성의 실현은 언제나 활동적인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봉윤숙 시인은 유한한 시어들을 무한하게 사용하는 활동을 보이고 있다. 시어에 대한 다양한 상징과 의미화로써 새로운 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시인의 시어들은 창작 과정에서 힘을 발휘한다. 곧 에네르게이아의 활동을 추구하는 것이다. 시인의 시어들은 제한되거나 고정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움직여 시 세계의 토대를 이루면서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확장한다. 이와 같은 면에서 봉윤숙 시인의 시어들은 활동성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