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라는 행위를 통해 삶을 채워 간 많은 작가가 그러했듯이 결국 이들의 작업 역시 더 나은 자신의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이었고, 그 안에서 추구하게 된 어떤 가치에 대한 비언어적 표현이었다. 그 깊고 다양한 개인의 내면을 탐구하는 동안 이렇게 아름답고 따뜻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마음속에도 물방울이 맺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슬픔과 분노가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아름답게 발현될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예술이란 천부적 재능과 천재적 영감이 아닌 묵묵한 인내의 축적으로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ㅡ 프롤로그 중에서
“매 순간이 절실했던 거 같아요. 저에게 미술을, 예술을 해나간다는 것은 희망을 찾기 위한 것이자 스스로 버텨 내기 위한 것이었으니까요. 그 절박함을 표출하는 과정이 내면에 응어리진 것들을 꺼내고 치유할 수 있도록 했어요.” ㅡ 권지안
“어릴 때부터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에 끌렸던 거 같아요. 나는 왜 그릴까? 그냥 좋아서. 그렇다면 왜 좋을까? 모르겠어요. 내가 왜 태어났는지 이유를 모르듯이. 그림은 제게 삶 자체이고, 이유를 찾기보다 나는 그냥 느끼고 표현하면 되는 존재로 생각해요.” ㅡ 권철화
“프랑스에서 〈너의 그림을 찾기 어렵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한 대 맞은 느낌이었어요. 그 일을 계기로 〈내 것이 뭐지? 내 스타일이 뭐지? 내 선이 뭐지?〉라는 고민을 시작하면서 오래 단련된 오른손이 아닌 왼손에 붓을 쥐었어요.” ㅡ 김참새
“저는 영감을 믿어요. 그런 것이 오는 순간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순간은 1년에 한두 번 올까 말까예요. 그래서 영감에 기대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와주면 고마운 일이지만, 그게 오지 않아도 그저 매일 열심히 그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ㅡ 김희수
“〈디자이너가 고갈된다〉라는 것은 무엇이 사라진다는 뜻일지 생각해 봤어요. 제게 〈그 무엇〉은 시간과 경험에 따라 계속 비워지고 채워지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전 앞으로도 고갈되지 않을 거예요. 신선함이 떨어진다면 그간 쌓아 온 견고함이 올라올 테니까요.” ㅡ 문승지
“예술성이 있다, 없다는 작가 스스로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관람자의 몫이죠.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태도〉예요. 〈이런 것도 예술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도발적 태도 말이죠.” ㅡ 샘바이펜
“제 그림 속 사람들은 대부분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고, 미워하는 이들은 거의 없어요. 그 속에서 만약 외로움이 느껴진다면 그건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사랑에 대한 갈망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저는 늘 사랑에 대해 그리고 있으니까요.” ㅡ 성립
“제게 작가로서의 영예로움이란, 이다음에도 여전히 무엇을 이루고 싶다는 꿈을 꿀 수 있다는 거예요. 공예가로서 계속해서 작업해 나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다는 거니까요.” ㅡ 양유완
“그리는 행위 자체는 무엇보다 제 즐거움을 위한 것임이 틀림없어요. 하지만 작업을 타인과 공유하는 건 저를 넘어서는 일이죠. 그림이라는 매개를 통해 상대에게 〈말〉을 던지는 순간, 책임감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ㅡ 콰야
책의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이 인터뷰는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불확실한 미래 앞으로 용기 내어 자신의 길을 찾아 가는 모든 청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꿈꾸고 노력하고 좌절하고 상처 입지만, 자신을 믿었던 사람들. 도저히 믿기 힘든 순간에도 자신을 믿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한 이들의 이야기다. 원고를 쓰는 내내 그들로부터 위안받았다. 그래서였다.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ㅡ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