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율성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전투 중인 병사들이 한마음으로 힘껏 부르며 그들의 전의를 드높이는 전투적인 음악을 주로 발표하고 후일 그와 관련된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되는 사정은 그러한 데서 기인했다. 만일 그가 평화롭고 일상적인 생활 가운데 있었다면 보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그래서 보편적인 정서에 스며드는 음악가로서 기억될 수 있었을 것이다. 크리노바 교수의 권유를 따라 이탈리아로 가서 음악 수업을 더 받을 수 있었다면 그의 음악은 전혀 다른 세계를 선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1930년대는 전쟁과 폭력의 시대였다.
율성은 조국의 해방을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일제에 맞서 싸우고 있는 중국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선의 해방과 중국이 일본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 아니라고 믿었다. (109~110쪽)
율성은 언제나 대중과 함께하면서 현장에서 음악의 소재와 주제를 찾았다. 그가 만들고 부른 노래는 어떠한 사상이나 이념보다 더 빠르고 강렬하게 사람들의 가슴속에 파고들어 깊고 오랫동안 자리 잡는 마력이 있었다. 물질적으로 늘 부족하고 장제스군과 일본 제국군의 끊임없는 공격에 위협을 느끼면서도 옌안에서는 항상 크고 작은 음악회가 중단되지 않았다.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그리고 적들을 향한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상으로서 음악은 존재했고 그 중심에는 정율성이 있었다. (146~147쪽)
“나라 사이에 진정한 친구란 없다. 필요에 다른 동맹만 있을 뿐이다. 동맹은 언제든 와해하고, 필요에 따라 다른 나라가 동맹이 된다. 한때 동맹이었던 나라가 돌연 적이 되기도 한다. 그것이 국제관계다. 그러하니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자체의 힘을 기르는 것이다.”
“우리는 힘이 없지 않습니까? 힘이 없어서 일본제국에 나라를 빼앗기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그런 탓에, 장제스든 마오쩌둥이든 그들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조국의 해방이 비로소 가능해지니까. 힘을 빌리는 것은 괜찮다. 문제는 물속의 소금처럼…….”
“물속의 소금이요?”
“그렇다. 소금이 물속에 들어가면 녹아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속에 소금기는 남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자칫 물속의 소금이 그러한 것처럼 형체도 사라지고 그 본질마저 사라져버리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 한다.” (16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