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영국 최초의 추리소설인 콜린스의 『문스톤』에서부터 인도는 “천 명의 목숨을 빼앗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사람을 살해하는 일을 파이프에서 담뱃재 터는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그려진다.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재현된 인도와 인도인도 다르지 않다. 『네 사람의 서명』에서 인도인은 “갑자기 몰려나온 20만 명의 시커먼 악마들”로 규정되고, 인도 반란은 “영국의 켄트와 서리처럼 고요하고 평화롭던” 지역을 “고문과 살인과 능욕”의 현장으로 바꾸어 버린 사건으로 그려진다. 인도는 “광신자와 온갖 종류의 악마 숭배자들이 득시글거리는” 나라로, 인도인들은 영국 여성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영국인의 집을 불태우고 나서 “불타는 집 앞에서 춤추고 환호하는” “붉은 코트를 걸친 시커먼 악귀들”로 재현된다. 『네 사람의 서명』에는 런던으로 잠입해 살인을 저지르는, 셜록 홈즈 시리즈의 가장 흉악한 범죄자 중 한 명인 통가가 등장한다. 통가는 인도 식민지에 속한 안다만 제도 출신으로 설정된다. 소설 속에 인용된 “가장 권위 있는 최신” 대륙 지명 사전에 따르면, 안다만 제도 원주민들의 특성은 왜소하고 기형적인 신체와 흉포하고 잔인한 성질로 요약된다.(19쪽)
“충직하고 순종적인 흑인 하녀와 유모의 이미지”는 원래 흑인 여성 가사 노예들에 대한 경제적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노예 해방노예 해방 이후에도 이런 이미지는 흑인 여성 가사노동자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기존의 이미지에 더해, “말하지 않고 듣지 않고 드러내지 않는” 태도가 새롭게 흑인 여성 가사 도우미의 이미지에 덧씌워졌다. 어떤 요청에나 충실하게 반응하지만, 권리를 주장하거나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 가사 도우미가 흑인 여성 스테레오타입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흑인 여성 탐정 추리소설은 가사노동자를 탐정으로 선택한다. 이런 선택은 흑인 여성의 스테레오타입에 기대려는 손쉽고 편리한 결정으로 보일 수 있지만, 흑인 여성을 “하찮은” 존재로 여긴 인종적 편견을 반복하려는 것이 아니다. 흑인 여성 탐정 추리소설은 “착하고 아둔한” 흑인 하녀라는 고정관념이 잘못된 것임을 폭로하기 위해 기존의 스테레오타입을 동원한다.(53쪽)
할렘 시리즈에서 하임즈는 미국 사회에서 인종적 갈등과 대립이 악화한다면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에 관해 전망한다. 후기작으로 갈수록 그는 인종주의가 해결되지 않으면 끔찍한 미래가 도래하리라 예측하고 그에 대해 경고한다. 『권총을 든 눈먼 사내』에서 하임즈는 부조리한 폭력의 파괴적 결말을 예언했고, 후속작으로 발표한 할렘 시리즈의 마지막 소설인 『플랜 B』에서는 파국과 공멸을 경고한다.(179쪽)
모즐리는 『빨갱이의 죽음』에서 흑인의 인종적, 정치적 불평등과 억압을 유대계 공산주의자의 수난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고, 『흰 나비』와 『블랙 베티 실종 사건』에서는 흑인 가정의 폭력과 가족 해체의 문제를 고민한다. 『낚시하러 간 적이 있는』과 『금발 여인 페이스』에서는 군대 내 인종주의와 흑인 참전 군인들의 트라우마를 다루며, 『불량소년 브롤리 브라운』, 『이지 롤린스 이야기 여섯 편』, 『리틀 스칼렛 살해 사건』에서는 흑인 폭동의 원인에 대해 고찰하고 진단한다. 『시나몬의 입맞춤』과 『리틀 그린 실종 사건』에서는 흑인 청소년의 교육 문제와 마약 문제를 다루고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로즈 골드 납치 사건』에서는 급진적인 흑인 해방운동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최근작인 『피의 숲』에서는 다시 흑인 폭동의 정치학에 관해 사유한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가장 좋아했던 흑인 추리작가 모즐리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 시대와 트럼프 집권기를 관통하면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추리소설의 새로운 물결”이 더 높고, 더 넓게 일도록 만드는 글쓰기를 계속해 왔다. 그리고 그가 창조한 흑인 탐정 이지 롤린스는 가족과 일, 개인과 공동체, 명분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며 성숙하고 입체적인 인물로 변모해 가고 있다.(2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