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5 왜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월급을 받아도,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부 와 미래가 갈리는가. 한국 사회에서 이 질문은 점점 더 절실해지고 있다. 수도권은 과밀과 집중의 부담을 안고, 비수도권은 인구 감소 와 산업 쇠퇴라는 이중 압력에 놓여 있다. 어떤 곳은 비어가고, 어떤 곳은 넘쳐난다. 그런데 정작 소득 통계를 들여다보면 지역 간 격차는 우려만큼 커 보이지 않는다. 피부로 느끼는 격차와 숫자로 잡히는 격차 사이의 이 어긋남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이 책은 그 어긋남이 어디서 생기는지를 따라간다. 핵심 질문은 ‘어디가 뒤처졌는가’가 아니라 ‘권력과 기회, 자본과 산업이 어떻게 공간적으로 배치되어 있는가’이다. 지역 간 격차는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생산과 의사결정의 기능이 공간적으로 분리되고 위계화되는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다. 이러한 시각은 1980년대 영국 비판 지리학, 특히 도린 매시(Doreen Massey)가 강조한 ‘생산의 재편과 권력의 지리’에서 출발한다.
물론 지역을 비추는 시선은 하나가 아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뿐 아니라 경부축(영남)과 비경부축(호남), 도시와 농촌, 대도시와 중소 도시라는 축이 저마다 다른 현실을 드러낸다. 소득으로 보면 완만한 격차가 자산으로 보면 가파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이 수도권-비수도권 구도를 중심에 두는 것은, 이 축이 권력, 자원, 인구, 산업, 기회가 가장 응축적으로 재편되는 지점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완결된 정답이 아니라, 특정 시점에서 포착한 하나의 ‘스냅샷’이자 하나의 시각이다.
_「서문: 한국 사회 불평등의 공간적 지형」
p.116-117 비수도권의 한 산업도시에서 대학을 마친 청년은 종종 두 갈래 길 앞에 선다. 전공과 학력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거나, 고향에 남아 눈높이를 낮춘 일자리를 받아들이거나다. 양질의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수도권에 몰리면서, 비수도권에는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나타난다. 하나는 청년, 특히 청년 여성의 상경이 빨라지는 인구 유출이고, 다른 하나는 비수도권에서 더 높게 나타나는 하향취업이다. 둘은 양질의 일자리 부족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 두 갈래의 결과다. 이 장은 비수도권의 일자리가 왜, 어떻게 질적으로 무너지고 있는지를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과 분공장 경제의 균열 속에서 추적한다.
3장은 그 질문을 하나의 소득수준이 아니라 격차의 원천에서 다시 묻는다. 핵심은 일자리 분포이며, 더 정확히는 일자리의 질과 업무의 공간적 배치다. 같은 생산이 이루어지더라도 어디에 기획·연구· 관리·금융·전문서비스 같은 고부가가치 업무가 자리 잡는가에 따라 기회와 경로는 달라진다. 우리나라 경제는 세계경제와의 연계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특정한 공간적 분업 구조를 형성하고, 그 과정에서 생산은 전국으로 확산되지만, 고부가가치 업무는 대체로 수도권에 집중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즉, 수도권이 의사결정과 전략 수립이 이루어지는 ‘구상 공간’으로, 비수도권이 제조와 생산이 중심이 되는 ‘실행 공간’으로 구획되는, 이른바 ‘분공장 경제’의 형성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구조에서는 고용 총량이 전국적으로 분산될 수 있다. 그러나 직무 위계, 임금 수준, 경력 축적 가능성, 네트워크와 정보 접근성 같은 질적 요소는 공간적으로 분리된다. 동일 산업 내부에서도 본사 기능과 연구개발은 수도권에, 생산 공정은 비수도권에 배치되면서 기능적 위계가 고착된다. 그 결과 지역 간 격차는 단순한 소득 차이를 넘어 기회 구조와 미래 경로의 차이로 전환된다. 청년층과 고학력층 이동은 이 차이가 개인의 선택과 기대 속에서 어떻게 번역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직접적인 지표가 된다.
_「3장 공간분업과 일자리 위계」
p.214-215 같은 회사에서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월급을 받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수도권에, 다른 한 사람은 비수도권에 산다. 10년 뒤 두 사람의 월급 통장은 비슷할지 몰라도, 보유한 집과 자산의 가치는 전혀 다른 궤도에 올라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 불평등을 가르는 것은 더 이상 매달 들어오는 소득만이 아니다. 그 소득이 자산으로 전환되는 정도가 사는 곳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장은 소득과 자산을 분리된 차원이 아니라 결합된 구조로 함께 들여다본다.
앞선 장이 지역 간 총계소득과 일자리 구조에 초점을 두었다면, 여기서는 가구 단위 자료를 바탕으로 자산 구조까지 포함한 입체적인 불평등 양상을 탐색한다. 특히 소득과 자산을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상호 연관된 구조로 이해한다는 점에 분석의 초점을 둔다.
소득은 일정 기간의 흐름을 반영하는 지표이지만, 자산은 장기적 축적과 소유 구조를 반영한다. 따라서 지역 간 격차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득분포뿐 아니라 자산 축적의 공간적 편중과 그 상호작용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장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하여 2012~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를 이용해 소득과 자산 불평등 추이를 살펴보고, 이를 추동하는 집단 구조를 분석한다. 나아가 소득과 자산 불평등의 요인분해를 통해 이들 불평등이 어떤 소득원천과 자산 구성 요소에서 비롯되는지를 검토한다. 이를 통해 지역별 가구 간 불평등 구조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또한, 소득과 자산을 개별적으로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변량 지니계수와 결합분포 분석을 통해 두 자원이 어떻게 함께 작동하는지를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자산 분포상의 위치가 소득분포 지위와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를 추정함으로써, 소득과 자산 간 상호 강화 또는 분리 현상의 여부를 검토한다. 이는 단일 지표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종합적 불평등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시도이다.
_「5장 소득과 자산 불평등의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