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6
그 무렵, 한편으로 나는 프랑스 파리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퇴직금과 가능한 모든 것을 쏟아, 당분간 어떻든 생존할 수 있을 것이었다. 신세 진 어느 지인에게 이 불길을 전하고, 나는 프랑스로 떠났다. 그분은 내가 다시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럴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것은 나에게 생존과 존엄을 위한 유일한 선택이었다.
P34
그 사고가 일어났던 밤이었다. 세상은 마치 모든 것이 잠든 듯 고요했지만, 나는 침대에 누운 채 내 몸 전체를 덮고 있는 짙고 무거운 어둠을 또렷이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내 안에서 멈추지 않고 울려 퍼지는 한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있었다.
“너는 이제 끝났어.”
“너는 이제 끝났어.”
“너는 이제 끝났어.”
그 목소리는 단순한 속삭임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몸 깊숙한 곳, 뼛속까지 파고들며 내 존재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내 몸 깊숙한 어느 심연에서 울려 퍼지는 그 냉소에 가득 찬 소리가 반복되었다. ‘끝이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고.’ 나는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입술을 가다듬으려 애쓰며 고개를 저었다. 그 말의 공명은 곧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 땅을 떠나야 하며, 언젠가 떠날 것이라는 절박한 갈망으로 변했다. 나는 그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갈망을 붙잡고 살아남으려 애썼다. 그리고 말 그대로 생존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P46
이 집은 정확히 1900년에 지어진 것으로, 지하실, 반지하의 스튜디오, 1층 거실과 작은 부엌, 그리고 2층의 두 개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지붕에는 이미 내가 들어가기 오래전부터 구멍이 뚫려 천으로 그 구멍을 가려 놓고 있었다. 때때로 집주인 트리스탕(Tristan)은 지붕 위에 올라가 그 구멍을 메우고는 했다. 나는 옆집 지붕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햇빛을 쬐고, 나무들에 둘러싸여 작업을 했다. 이곳은 주로 덴마크인들이 그들 커뮤니티를 통해서 처음 파리에 와서 머무는 곳이었다. 나는 트리스탕이 처음으로 맞아들인 한국인 손님이었다. 트리스탕은 미국의 방송국 NBC에서 사진 기자를 오래 하며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큰아들이 코펜하겐에 살고 있어서 가끔씩 트리스탕을 찾아왔다. 바로 옆에 같은 정원을 끼고 있는 그의 집은 크고 작은 카메라들과 삼각대로 가득 차 있었다.
p132
창작의 길은 예측 불허, 지극히 유동적이다. 하나의 행위가 다음 행위를 낳고, 다음 행위를 낳고, 다음 행위가 이전의 행위를 바꾸고, 이후의 행위가 최초의 구성을 바꾼다. 이렇게 원인과 결과가 뒤섞이며 현재, 과거, 미래가 여러 층위로 포개 진다. 이렇게 예술가는 애정 어린 관찰자가 된다. 그 관찰 속에서 관습적인 상징에서 탈피한, 살아 꿈틀거리는 관계의 형상이 피어난다. 예술은 곧 그가 놓인 환경이기도 하다. 흙, 미생물, 사람. 살아 있는 것과 껍질에 싸여 있는 씨앗과 같다. 그 씨앗이 어느 자궁 속에서 숨 쉬다, 마침내 나타나게 된다. 그렇게 예술 작품은 살아 있는 생태계다. 탄생과 재탄생을 거듭하며, 변신하는 물질의 숨결을 품는다. 예술계 역시 살아 있는 생태계다. 그 속에서 다양한 정치·사회적 힘들이 얽혀 나간다. 예술가는 그 스스로 그 생태계의 안과 밖에서 나타나고 사라지는 생물이다. 여러 힘들의 역동과 역경 속에서 햇빛, 바람, 토양, 그 생태계의 지도를 그려 나가는 생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