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망했다.
정확히는 망했다는 감정에 사로잡혀있다. 망한 인생의 기준은 무엇일까? 나 정도면 그 대답이 되지 않을까. 만 서른이 된 26년 1월 나는 할 줄 아는 것이 없고 하고 싶은 것이 없으며 그렇다고 열심히 살고 싶지도 않다. 내 시간은 15년 전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그때 그대로 멈춰 있다. 살아온 30년의 세월 중에 절반인 15년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보냈다면 충분히 ‘망한 인생’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애석하게도, 이 책은 내 상상에 기반을 둔 소설이 아니라 내 삶 전반을 다룬 에세이다. 15년 전 긍정적인 마음으로 가득하던 그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의 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한 모습이다. 그런 와중에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는 1 내 삶을 돌아보기 위함 2 나를 예쁘게 포장하고 싶어서이다. 더해서 책을 읽는 독자들이 나를 통해 얻어가는 게 있다면 정말 좋겠다.
세상에는 잘난 사람들의 잘난 책들이 매일 같이 쏟아진다. 나 또한 그런 책들을 적잖게 읽어보며 변화를 모색해 보았으나 나와는 합이 맞지 않았다. 망한 사람의 인생은 잘난 사람과 결이 달라서 그런 것일까? 그래서 나는 망한 사람만이 전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 들어가며 -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가 지금까지 공부한 게 아쉬워서, 매몰 비용 때문에 입시판을 떠나지 못한다고 생각하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2025년 9번째 수능을 보는 동안 단 한 번도 성실히 공부해 본 적이 없고 끝까지 완주해 본 경험도 없다. 그렇기에 시험을 보던 날 긴장했던 적도 없다. 나는 공부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언제라도 입시판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내 성적을 보면 이게 사람 성적인지 뭘 하고 살았는지 궁금함이 쏟아질 것이다.
왜 아직도 대학에 가려고 하냐고 묻는다면
이 질긴 악연을 한 번쯤은 피하지 않고 마주쳐야 한다는 내 믿음 때문이다. 이건 단순히 수능과의 싸움이라기보단 살아온 인생과의 줄다리기다. 나도 대학에 가는 것을 포기한 때가 있었다(2023~2025 수능 미응시). 하지만 다시 입시판에 돌아오게 되는 것은 단 한 번이라도 수능이라는 이 녀석과 제대로 싸워보지 않으면 앞으로 하는 다른 일들에서도 언제나 도망칠 궁리만 하는 내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대학이 뭐길래, 이렇게까지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걸까.
아니, 그 반대인가.
수능 공부는 단순히 대학에 가기 위한 과정이라기보단 인생에 대한 자세를 배우고 역량을 구축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더더욱 쉽게 포기할 수가 없다.
- 대학이 뭐길래 - 중에서
부모님에게 난 빚을 지고 있고 공부도 하지 않는다고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난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한 구제불능이라고 고백하지 못했다. 친척들에게 요즘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질문에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다. 무지가 탄로 나기 전에 나를 위장하여 상황을 넘겨야 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거짓 이야기를 지어내며 한심한 내 자신을 어떻게든 포장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솔직히 내가 살아온 인생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면 그들이 날 어떻게 볼지는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나는 ‘가짜’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가족에게는 변명을 대기에 급급했고 여자친구를 사귈 때면 과거는 묻지 말라고, 미래를 생각하자고 대화 주제를 넘겼다. 자격증 공부를 위해 만난 사람들에게 자격증은 임시방편일 뿐 난 아직도 대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내 인생은 거짓이 아니면 안 되는 인생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한심한 인생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 세상에 밝혀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내 과거를 지워가야만 했다. 하지만 그러기에 나는 여기저기 벌인 일들이 많았다. 내 인생은 엉망진창이었다. 내 부족함을 알고 있는 사람과 장소는 너무나도 많았다.
난 지울 수 없는 과거를 거짓으로 덮어 무마시키려 한 것이다. 사실은 공부도 안 하면서 난 수능을 N번 봤어요 라고 말하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렇다고 대학이라는 선택지를 내 가능성에서 없애고 싶지는 않았다.
- 거짓으로 점철된 인생 -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