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p. ‘햄릿의 밤, 스패너를 던지고 권총을 잡다’ 중에서
어릴 적부터 유난히 강했던 호기심이 내면에서 고개를 들었다. 대통령이 사는 곳은 어떤 풍경일까? 대한민국 최고 권력의 1미터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윽고 결정적인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자동차는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을 지키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를 움직인 건 거창한 애국심 이전에,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에 대한 본능이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내 딸에게 물려줄 유산은 대기업의 풍요로움이 아니라, “아빠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키는 사람이다.”라는 당당한 자부심이어야 한다고 믿었기에, 나는 과감히 인생의 핸들을 꺾기로 결심했다.
63p. ‘북방외교의 첫 삽을 기록하다’ 중에서
“자, 빨리 자리 잡으세요! 시간 없습니다!”
내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우리 사진기자들과 영상팀이 순식간에 트랩 정면 명당 자리를 차지하고 재빨리 렌즈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1호기의 문이 활짝 열렸다.
저 멀리서 차가운 공기가 불어오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뜨거운 취재 열기가 활주로 주변을 채웠다. 노태우 대통령 내외가 트랩 상단에 모습을 드러내고 손을 흔들었다. 태극기가 선명한 비행기를 배경으로, 적국의 땅에 첫발을 내딛는 대한민국 대통령…….
“타다닥! - 찰칵! 찰칵! 찰칵!”
수십 대의 카메라 셔터가 일제히 터졌다. 모스크바의 잿빛 하늘 아래 울려 퍼지는 그 소리는 냉전의 벽을 깨부수는 소리 같았다. 뷰파인더 너머로 역사적인 장면을 담는 기자들의 눈빛은 절박함을 넘어 숭고해 보였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지난 선발기간을 떠올렸다. 서먹하던 첫 악수, 커피를 함께 마시던 저녁, 그리고 말보로 담배 한 보루……. 프레임 안의 장면은 기자들이 담았지만, 그 장면이 가능했던 이유는 프레임 밖에서 지난 시간 쌓아온 보이지 않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경호관이 역사에 기여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114p. ‘관저의 뜰, 봄날의 가든파티’ 중에서
식사가 무르익을 무렵, 대통령이 커피잔을 들고 잔디밭 한가운데 서셨다. 화려한 조명도, 준비된 원고도, 단상도 없었다. 그저 뜰에 핀 야생화를 바라보듯 우리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추며 담담하게 입을 여셨다.
“내가 서울시장 때부터 청계천 복원이니 대중교통 개편이니 하며 참 시끄러운 일을 많이 겪었지 않나. 밖에서는 나보고 무조건 밀어붙인다고 ‘불도저’라고 부르지만…… 나라고 왜 외롭지 않겠나.”
잠시 말을 멈춘 대통령은 쑥스러운 듯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이어진 말은 그 자리에 있던 우리 모두의 가슴을 쿵 하고 울렸다.
“그런데 청와대 들어와서 가장 든든했던 건, 바로 내 등 뒤에 있는 자네들이야. 아무리 밖에서 비바람이 몰아쳐도, 자네들이 내 등 뒤에 딱 버티고 있다는 그 믿음…….”
잠시 말을 멈추시고 찬찬히 주변의 우리들을 둘러보시고는 말을 이으셨다.
“방탄유리보다, 콘크리트 벽보다 더 단단한 자네들이라는 ‘사람 울타리’가 있었기에 내가 겁 없이 일할 수 있었어. 자네들은 단순한 경호관이 아니야. 나와 내 가족을 지키는 진짜 식구지. 늘 고맙네.”
그 말을 듣는 순간 귓속을 윙윙대던 무전기의 기계음은 사라지고, 어디선가 이름 모를 새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22년 가까이 갑옷처럼 두르고 살았던 긴장이, 햇살 한 줌에 눈이 녹아내리듯 소리 없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대통령과 경호관’이라는 지키고 지켜지는 수직적인 관계가 허물어지고, 서로의 노고를 이해하는 ‘사람 대 사람’의 온기만이 그 뜰을 가득 채웠다. 대통령의 그 말 한마디는 그 어떤 훈장보다도 묵직하게 우리의 가슴에 내려앉았다.
136p. ‘IT 정글의 신병, 어제의 권위를 버리고 마주한 생존의 사선’ 중에서
청와대 경호실에서의 30년은 어딜 가나 예우와 존중을 받는 삶이었다. 대통령을 모신다는 자부심은 나를 지키는 뚫리지 않는 갑옷이었고, 내가 내미는 신분증은 어디서나 통하는 ‘프리패스’였다. 그러나 민간 기업 부사장이 되어 마주한 비즈니스 정글의 문법은 상상 이상으로 냉정하고 투박했다.
부사장이라는 화려한 직함은 명함 위의 글자일 뿐, 나는 더 이상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우리 회사의 기술력을 단 한 건이라도 더 팔기 위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현장을 누벼야 하는 철저한 ‘을(乙)’의 위치로 내려온 것이다.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건 무작정 ‘기다리는 일’이었다.
대기실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가 나는 스스로 자세를 점검하는 습관이 남아있다는 걸 알아챘다. 등을 펴고, 두 발을 바닥에 붙이고, 시선은 출입구를 향해. 자동으로 경계 태세가 취해졌다. 그러다가 “나는 지금 영업 대기 중인 부사장이지, 경호관이 아니지.”라고 느끼면서 피식 웃었다. 그러나 몸이 기억했다. 30년의 근육 기억이 지시보다 빠르게 반응한 것이다. 나는 의도적으로 등받이에 기댔다. 불편했다. 하지만 이것도 연습이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자리에 맞는 새로운 자세를 익히는 것.
176p. ‘청렴과 지식의 전수, 대한민국 공공감사의 나침반’ 중에서
2024년 초, 전임 회장단의 끈질긴 노력과 협상 끝에 마침내 IACA와 공식 교육 협약을 체결했다. 이를 바탕으로 마침내 2024년 11월, 인천공항 인재개발원에서 전국의 감사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반부패 국제 기준과 글로벌 최신 동향을 포함한 ‘IACA 글로벌 반부패 전문가 교육’을 실시했다.
비엔나의 핵심 강사진이 직접 와서 전국의 공공기관 감사 관계자들과 얼굴을 맞대고 국제 뇌물 방지, 자금 세탁 방지, 디지털 자산의 부패 추적 등 글로벌 최신 이슈를 논의하는 현장은 그야말로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국내에서 이런 세계적인 통찰을 얻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제야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현장의 호응을 보며 나는 확신했다. 이 시도는 단순히 교육 한 번을 잘 치른 것이 아니다. 우리 감사 교육이 세계 무대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 역사적인 분기점이었다. 개인의 직관이 아닌 글로벌 표준이라는 시스템이 우리를 지켜줄 것임을 증명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