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복도 물려 입었다. 그때는 구멍이 왜 그리 잘 났는지 모른다. 밖이 환히 보이게 나달나달해지면 엄마는 낡은 자리를 동그랗게 오려 아버지가 신던 양말의 발목 부분을 잘라 덧대주었다. 두 쪽 무릎에 다른 색깔로 대준 내복 바람에 마냥 신나 엘비스 프레슬리의 개다리 춤을 추었다. 마냥 웃어주던 엄마, 아버지의 얼굴이 지금도 환하다.
작은 집이 들썩이게 따뜻한 날이었다. 정말 사랑받고 산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자랐다. 엄마 손이 거치면 안 되는 것이 없었으니, 무엇이 부러웠으랴! 가끔 옛이야기를 하면 엄마,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씀하신다.
“세상에 그렇게 착한 아이들이 없었다.”(15쪽)
지금도 간간이 내 아이들에게 그때 이야기를 들려준다. 맛을 전해줄 수는 없지만, 그때 엄마가 사랑받았노라고 전하고프다. 세상 어떤 맛보다 고소한 밀반죽 구이와 달콤한 미숫가루 떡은 나를 따뜻하게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그 이야기를 어쩌다 아버지 앞에서 떠올리면 아주 미안해한다.
“그때는 먹여줄 게 참 없었어. 그래도 만들어 주는 것마다 참새 새끼처럼 받아먹던 너희들이 참 신통했지.”(20쪽)
꽃잎이 흩날리던 날을 할머니는 누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봄날이면 할머니는 나를 찾아온다. 여전히 따뜻한 손길도 훈훈한 미소도 없이 내게 온다. 해준 것 없으니 부담스레 울지 말라 했던 속마음을 읽게 해주었던 할머니…… 나에게만은 열어줬던 할머니.(31쪽)
‘삭히다’라는 말은 ‘음식이나 재료를 발효·숙성시키다, 감정이나 생각을 속으로 누르며 시간에 맡기다’라는 뜻을 품고 있다. 아버지가 내 입에 넣어준 새우젓과 홍어는 나를 삭히게 했다. 멀리 떨어져 살지만, 아버지는 내게 쉼 없이 신호를 보냈다. 구구절절이 늘어놓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굳이 말해서 아버지 가슴에 흠집을 내지 않았는데도 아버지는 충분히 나로 인해 아팠을 것이다. 간단명료한 몇 마디에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읽고도 남았다.(5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