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 서평
“캔버스라는 다중우주에서 내 마음대로 세상을 변형하는 자유”
붓 한 자루 쥐고 덤벼든 동네 시인의 가장 솔직하고 유쾌한 분투기.
상사 무서울 것 없고, 지 못할 말 없을 것 같은 50대 중반의 인간 수컷 글쟁이가 덜컥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 술자리에서 오간 객기로 시작된 일이었다. 동네 문화강좌 서양화반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수강생 대부분은 은퇴 연령을 넘긴 여성들뿐이다. 뻘쭘함을 무릅쓰고 4B연필을 쥐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 선 긋기에 금세 불량 학생이 되어버린다. 그림 선생님을 향해 “배고파요!” 투정을 부리거나 “왜 이혼했어요?”라는 당돌한 질문을 던지기도 하면서 말이다.
『느지감치 그림일기』는 단순히 ‘어느 날 그림을 그리게 된 중년 남자의 우아한 취미 생활록’이 아니다. 이 책은 서툴게 붓을 든 저자의 손끝에서 탄생한 그림들과, 그보다 더 다채롭고 짠내 나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버무려진 유쾌한 일상 에세이다.
작가의 예술혼은 캔버스 밖 일상에서 더욱 시트콤처럼 빛난다. 기껏 공들여 그린 인물화는 딸에게 "장난스러운 부분이 너무 많다“라며 팩트 폭격을 당하고, 화장실에서 아내의 칫솔을 잘못 썼다가 뼈아픈 잔소리를 듣기도 한다. 미술 전공자 딸이 "항상 제일 예쁜 건 물감똥이야”라고 무심하게 던진 한마디를 진짜 작품명으로 삼아버리는 대목에서는, 평범한 가장의 둥글둥글한 애환과 가족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저자는 “예술은 노는 것이다. 즐겁게!”라고 말한다. 비록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매 순간이 절망스러울지라도, 어둠을 다스려야 밝음이 더 선명해지는 수채화의 이치처럼 팍팍한 삶 속에서도 자신만의 색을 잃지 않으려 고군분투한다.
뭐든 오래 하면 잘해야 하고 나이 들면 점잖아져야 한다는 은근한 압박 속에서, “많은 남자가 나이 든 쫄보로 살다가 과거에 묻혀 죽는다”라며 속 시원한 일갈을 날리는 저자. 그의 솔직하고 꾸밈없는 문장들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핑계 대는 이들에게, 혹은 쳇바퀴 같은 일상에 작고 숨통 트이는 취미가 필요한 이들에게 뜻밖의 유쾌한 위로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