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한 접견실에서 황제, 조피 프리데리케 도로테아 빌헬미네 대공비, 루도비카 빌헬미네 공작 부인, 그리고 18세의 헬레네가 만났다. 루도비카 빌헬미네는 프란츠 요제프 1세가 베를린과 드레스덴에서 신부를 얻지 못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헬레네가 황제의 신부로 결정될 확률이 높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엘리자베트는 가정교사와 함께 접견실 옆의 별도의 방에서 따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중요한 결정적 순간에 활발한 딸 때문에 우발적인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공작 부인이 그렇게 조치한 것이었다.
결혼을 결정할 시간이 다가오자 프란츠 요제프 1세는 다소 불안해했고 이것을 감지한 조피 프리데리케 도로테아 빌헬미네 대공비는 아들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프란츠 요제프 1세는 독신의 작은 기쁨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긴장하고 있는 공작 부인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때 헬레네는 다소 경직된 분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옆방에 있던 여동생을 불렀다. 엘리자베트는 흰색 짧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풍성하고 비단결 같은 밤색 머리카락이 날씬한 몸매를 따라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손에는 들장미 다발을 들었고, 가정교사와 말다툼을 하느라 얼굴이 다소 불그레해진 상태였다. 엘리자베트는 초상화로 프란츠 요제프 1세를 본 적이 있고 전날에도 인사를 했기 때문에, 당황한 기색 없이 다가가 머리를 숙였다.(58~59쪽)
어린 딸의 눈을 감긴 엘리자베트의 분노와 죄책감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이 무렵 황후의 심적 상태는 측근들의 일기장과 서신에서 자주 언급되었다. 황후는 무력증과 식욕 부진, 은둔 등의 다양한 증세를 보였지만 이러한 것들은 이름을 댈 만한 병이 아니었기 때문에 황궁 의사들이나 궁정인들은 엄살로 간주했다. 다만 일부 의사들은 과도한 쇼크에 따른 장애 현상이라는 판정을 하면서 이를 ‘엘리자베트 신화’로 변용시켰다.(99쪽)
엘리자베트는 경호원 없이 여행하면서 가명을 사용하며 소수의 궁녀만을 동반하는 무리수도 두었다. 이때부터는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모로코, 이집트, 알제리 같은 나라들도 방문했다. 이러한 행동들은 결국 엘리자베트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유발한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암살당하는 순간에도 엘리자베트는 경호원은커녕 수행 궁녀 한 명과 낭독자 한 명만을 대동하고 있었다.(210~2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