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은 펄펄 뛰는 여동생 분희를 끌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다행히 다른 보부상이 뜯어말리는 바람에 그가 쫓아오지는 않았다. 장터를 벗어날 즈음에야 겨우 한숨을 돌린 장영실이 분희에게 말했다.
“어른한테 그러면 안 돼.”
“안 되긴! 오빠 보고 이상하다고 수군거렸잖아.”
분희의 말에 장영실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장영실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정확히 몰랐다. 다만, 원나라 소주에서 온 색목인이라는 소문이 돌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장영실은 다른 사람들보다 피부가 하얀 편이었고, 눈동자가 옥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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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구나.”
“아버지가 회회인1 이라 눈 색깔이 다릅니다.”
장영실이 착잡한 표정으로 대답했지만 노승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어둠을 만나거든 빛을 밝히거라. 그럼 어둠이 물러갈 것이다.”
뜬금없는 노승의 얘기에 분희가 손을 꽉 잡았다. 긴장하고 있다는 뜻이었지만 장영실은 왠지 노승이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흥미를 느낀 장영실이 물었다.
“빛을 밝히지 못하면 어찌 됩니까?”
장영실의 물음에 노승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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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심이라면 조선 최고의 무당이잖아. 네가 계심이의 딸이라고?”
“네, 원래는 어머니를 부르셨는데 굿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제가 대신 왔어요.”
“얼마 전까지는 정정하신 거 같던데?”
관탈야의 거듭된 물음에 화섬은 차갑게 대꾸했다.
“지난번 굿이 너무 힘드셨어요. 최근 굿거리도 많아지셨거든요.”
관탈야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화섬이 다시 사람들을 바라봤다.
“전국에 괴이한 일들이 벌어져서 굿을 해야 한다고 들었어요. 어머니 말씀이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은 따로 지내야 하고, 그 경계가 허물어지면 세상이 혼란스러워질 것이라고 하셨죠. 최근 그런 징조들이 보인다고 걱정하셔서 제가 대신 왔어요.”
화섬이의 얘기는 방 안의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다음 사람은 감당하기 어려운 분위기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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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갑니다. 경상도의 동농골이라는 곳으로요.”
장영실의 대답을 들은 최해산이 목에 걸고 있던 것을 벗어서 걸어 줬다. 가죽끈으로 만든 목걸이에는 기름종이 뭉치가 달려 있었다.
“목걸이에 달린 기름종이 안에는 잘 만든 화약이 들어 있다. 급할 때 불을 붙여서 던지거나 아니면 모닥불 같은데 던지면 폭발할 거야. 위급할 때 쓰거라.”
“고맙습니다.”
취토군 중 한 명이 크게 이름을 부르자 최해산이 일어나면서 말했다.
“오늘 중에 숙소로 사람을 보내서 화약이 든 대나무 약통도 몇 개 건네주마. 잘 챙겨 가거라.”
성큼성큼 걸어가는 최해산의 뒷모습을 보면서 장영실은 잊고 있었던 아버지의 존재를 떠올렸다. 가슴이 두근거린 장영실은 건네받은 화약 목걸이를 손으로 꼭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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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 관아는 산을 등지고 지어졌다. 읍내는 대다수가 초가집이었지만 관아 근처의 몇 개는 기와집이었다. 말을 타고 앞장서 가던 관탈야가 코를 벌렁거렸다. 그리고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어깨에 올라탄 매를 쓰다듬던 아륙이 그런 관탈야를 바라봤다.
“무슨 냄새라도 맡은 거야?”
관탈야는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시체 썩는 냄새 같지 않아?”
아륙이 말의 뒤를 졸졸 따라오는 검정개를 돌아봤다. 그러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면 저 개가 알아차렸을 거야.”
둘의 얘기를 듣던 화섬이 부채를 살살 부치면서 웃었다. 그녀의 웃음소리를 들은 황 도인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거, 귀신 냄새라도 맡은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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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긴 왜 살펴본 거야?”
이광평의 물음에 화섬이가 처마를 올려다봤다.
“새집이랑 거미줄이 안 보여서요. 이 정도 오래되고 큰 집이면 새랑 거미가 자리를 잡아야 하거든요.”
다들 무슨 뜻인지 어리둥절해하자 화섬이가 답답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그게 없다는 건 뭔가 안 좋은 기운이 있다는 뜻이죠. 동물들은 그런 걸 정말 잘 알아차리거든요.”
화섬이의 얘기를 들은 장영실이 물었다.
“그럼 여기가 안 좋은 집이란 말인가요?”
“일단 확인해 봤는데 아무것도 없어.”
둘의 얘기를 들은 강인손이 끼어들었다.
“아무것도 없으면 괜찮은 거 아닌가?”
화섬이가 혀를 차며 말했다.
“아무것도 없다고요. 귀신도 없고 잡신도 없고, 터줏대감 격인 신도 없어요. 특히, 부엌에 있어야 하는 조왕신이 아예 안 느껴진다고요.”
화섬의 얘기를 들은 이광평은 물었다.
“귀신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대체 여긴 어떤 곳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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