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 중단을 둘러싼 선택과 갈등의 기록
우리의 죽음은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가
▶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8년,
존엄한 죽음을 원했지만 존엄하게 죽지 못한 사람들을 기록하다
우리는 누구나 존엄하게 죽기를 바란다. 그 바람을 법으로 보장하기 위해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됐다. 연명의료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등 치료 효과는 없이 임종 과정만 늘리는 시술이다. 2018년, 국가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연장시키기만 하는 의료 행위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 본인과 가족들에게 부여했다.
이 법의 뿌리에는 두 사건이 있다. 가족의 부당한 퇴원 요구에 응한 의료진이 살인방조죄로 유죄를 선고받은 ‘보라매병원 사건’, 그리고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구한 가족의 손을 들어준 ‘김 할머니 사건’이다. 의료계를 뒤흔든 이 두 사건을 거치며 오랜 논의 끝에 탄생한 법으로 2025년 기준 3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서명했다. 한국인의 죽음 풍경이 바뀌는 듯했다. 그러나 『유예된 죽음』은 이 제도가 약속한 ‘존엄한 죽음’이 현실에서도 작동하고 있는지 묻는다.
이 책은 의료 현장을 직접 취재한 세 저자가 환자, 가족, 의료진을 만나며 한국 사회의 죽음을 가까이서 들여다본 기록이다. 법과 제도가 만들어낸 변화뿐 아니라 그 이면에 존재하는 혼선과 갈등 그리고 제도의 한계를 구체적인 사례로 드러낸다.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이들이 여전히 ‘원하지 않는 연명의료’를 경험하고 있는 걸까. 저자는 그 구조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 연명의료를 거부하겠다고 밝혀 두었어도,
결정은 환자 손을 떠난다
“지금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으면 한두 시간 안에 돌아가실 수 있어요.”
책에는 연명의료를 둘러싼 실제 풍경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말기 환자의 가족이 응급실에서 몇 분 안에 결정을 강요받는 장면,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서 가족 간 의견이 갈리는 상황, 연명의료가 시작되고 뒤늦은 후회까지. 죽음은 개인의 선택만으로 완결되지 않고 가족에게, 의료진에게, 제도의 빈틈으로 흘러든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두었다 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의향서는 임종과정 진입이 공식 확인된 이후에야 효력을 발휘하는데, 그 판단을 내리는 것 자체가 의사에게 법적, 윤리적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결정이 미뤄지고 있다. 환자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도 병원은 가족에게 의사를 묻는다. 환자의 의사는 현실에서 쉽게 무력화되고 가족 전원의 합의를 요구하는 조항은 자주 벽이 된다. 가족 간 갈등은 임종의 자리를 법적 분쟁의 장으로 만들기도 한다.
연명의료를 중단한 이후의 공백도 심각하다. 치료를 그만두기로 결정했지만 환자가 마지막을 보낼 호스피스 병상은 턱없이 부족하다. 외국인과 무연고자는 애초에 제도의 바깥으로 밀려나 있고, 제도적 갈등을 조율해야 할 공용윤리위원회는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제 기능을 못 한 채 시한폭탄처럼 방치되고 있다. 저자들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이 괴리를 보여주고, 제도의 설계와 운영 방식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를 분석한다. 나아가 연명의료결정법이 왜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 배경에 있는 법적, 윤리적 논쟁을 짚고 해외 제도와의 비교를 통해 개선 방향을 모색한다.
▶ 현장의 목소리, 여섯 전문가의 대답
이 책은 현장에서 마주한 환자와 가족, 의료진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으면서 예방의학 전문의, 변호사, 중환자의학과 교수이자 임상의료 윤리 연구자, 호스피스 병동 의료진, 웰다잉 활동가 등 여섯 명의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제도의 대안을 함께 모색한다. 이들은 각자의 현장에서 느낀 문제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존엄한 죽음이 제도 안에서 실천되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를 짚는다.
우리가 바라는 이별은 어떤 모습일까. 죽음은 모두에게 예외 없이 찾아오는 문제이고 삶의 끝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는 누구에게나 닿는 질문이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결국 우리 모두의 것이다. 제도는 만들어졌지만 존엄한 죽음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이 책이 그 빈칸을 채워가는 데 첫문장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