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고 비틀거리다/에둘러 비로소 제 길을 찾아가는/그대 향한 내 그리움
--006쪽 권양우 「그리움」 중에서
한 생을 벗는다는 건/한 길 벗고/다른 길에 든다는 것/울퉁불퉁 요동치는 트럭 위/동안거 끝낸 바랑처럼/가벼이 떠나는 노승 한 그루
--016쪽 김봉구 「늙은 소나무」 중에서
젊은 날 사랑이 아득한 오늘로 다가와/기쁨과 슬픔으로 어루고/깊은 골짜기로 강가로 데려간다
--025쪽 김선미 「기억을 저장하는 현」 중에서
남길 것 흘려보낼 것/빛의 안건을 펼쳐 놓고/말 대신 등을 토닥인다
--034쪽 김주영 「마을회의」 중에서
억새는 언제 꽃이 될까?/실루엣 사이 낮아진 노을이 점점 짙어질 때/어두워지는 키를 재보고 나서일까?
--043쪽 민구식 「억새평전에서」 중에서
기북면의 어느 찻집에서 정교한 미로에 들었어요/쉽게 생각한 길이 제자리를 돌다 출구를 잃었어요/그래도 돌아갈 수는 없어 또 걸어요/유혹의 음악 소리가 가까운데 노을은 더 깊숙해져 막다른 곳까지 왔어요/살다가 몇 번은 막힌 골목처럼 막막했지요
--054쪽 방화선 「편백나무 숲에서」 중에서
산 넘은 햇살은 마당을 쓸고/박새는 바람을 물고 사라진다/밤새 보이지 않던 내 그림자/마당 위에 선명하다/풍경도 고요하다
--056쪽 서명교 「부석사에서」 중에서
이 꽃 필 때면/봄의 첫 문장처럼/서로를 생각하자던 약속/꽃잎에 적은 하얀 이별
--069쪽 송준규 「하얀 이별」 중에서
붓도랑을 따라 흘러가지 못한 비늘들/저수지 바닥을 두드리며/흙 묻은 살빛, 가뭄 속에서/먹구름의 껍질이 터지길 기도하며/반짝이는 슬픔으로 스스로 조문했다
--077쪽 이규활 「비늘의 조문」 중에서
드디어 오늘/딸이 첫 출근을 했다/빈집에 나 혼자다/바로 거실 바닥에/큰대자로 드러누웠다
--082쪽 정보경 「바람 시원한 날」 중에서
비문 대신 일기 앱에 새겨넣은/시든 꽃 이모티콘/떨어질 잎 따윈 없는
--088쪽 최수빈 「시든 꽃 이모티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