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분 도시’의 시대
도시의 진짜 주인을 묻다
15분 도시가 진짜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도시를 찾아서
2021년 4월 열린 재‧보궐선거에서는 ‘15분 도시’가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가 15분 도시를,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는 이를 변형한 21분 도시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 개념이 너무나 생소해서 ‘15분 도시’가 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5년이 흐른 2026년 6월 지방선거에서도 ‘n분 도시’는 후보자들의 주요 공약으로 등장했다.
15분 도시에 대한 관심은 비단 국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15분 도시 원조 격인 프랑스 파리를 시작으로 미국 디트로이트, 중국 광저우와 청두, 호주 멜버른,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 모두 ‘15분 도시’ 혹은 이와 유사한 비전을 세우고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15분 도시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15분 거리 안에 업무, 교육, 의료, 문화, 상업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도시’를 뜻하며 개념 자체는 단순하다. 하지만 어쩐지 국내에서는 15분 도시의 핵심 취지에 대한 심각한 오독뿐 아니라 정책을 위한 홍보 수단으로 오용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모두를 위한 도시는 있다』는 15분 도시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도시는 어떤 도시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을 쓴 허남설 기자는 건축학을 공부하고 경향신문에서 도시행정과 정치‧사회 문제를 오랜 시간 취재해 왔다. 전작에서 도시 재개발 문제를 다룬 그는 이번 책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공간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며 ‘모두의 도시’를 꿈꾸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중요한 것은 ‘15분’이 아니다.
더 빠른 도시가 아닌,
더 소중한 도시를 꿈꾸는 사람들을 만나다.
이 책은 동네 공원을 둘러싼 저자의 경험에서 시작된다. 서울시 은평구의 서울혁신파크가 당국의 무신경 속에서 시민들의 공간으로서의 지위를 잃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좋은 공간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만으로는 소중한 장소를 곁에 둘 수 없다는 것이다. 『모두를 위한 도시는 있다』는 바로 그 소중한 공간을 지켜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도시를 만드는 사람들’은 길 한복판에 ‘우리동네 리어카’를 펼쳐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활보하던 도로를 소극장, 도서관, 교실로 만들었다. 이들의 ‘도시팝’ 프로젝트는 차로 가득하고 위험만이 있던 도시의 도로를 아이들의 놀이터로 바꾸었다. 서울 송정동의 오래된 다가구주택 ‘코끼리빌라’에서 시작된 한국 최초의 1유로 프로젝트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던 동네에 매주 새로운 이벤트를 만들어내며 젊은 사람들은 동네로 불러들였다. 경남 밀양의 밀주초등학교는 운동장을 생태운동장으로 바꾸고 주말에는 지역 주민에게 개방했다. 교직원이 점유하던 학교 1층 또한 북카페로 개조하여 아이들과 주민들이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했다. 이러한 공간 혁명은 학교와 학생, 교사 나아가 주민과 마을을 바꾸는 결과를 가져왔다.
도시를 바꾸는 가장 작은 힘
‘모두의 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
우리가 추구해야 할 15분 도시의 종착지는 ‘장소에 대한 애정의 회복’, 즉 토포필리아(topophilia)의 회복이다. 학교, 병원, 시장에 가는 데 1~2시간씩 소비해야 하는 도시에서는 장소에 대한 애착이 자라기 어렵다. 과밀한 지하철, 보행 안전을 위협하는 자동차 중심의 도로, 아이들의 일상을 위협하는 위험한 거리 환경 속에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를 사랑하기보다 견디게 된다.
15분 도시는 미래에 달성해야 할 추상적인 도시 모델이 아니라 내가 걷는 골목과 공원, 동네 학교와 문화공간, 자주 가는 가게와 이웃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고 회복할 것인가의 문제다. 결국 좋은 도시는 효율적으로 설계된 도시가 아니라, 사람들이 애착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도시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개발 논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공동체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이들이 펼쳐가는 실험의 기록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도시, 앞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도시의 모습에 대한 영감을 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