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지탱하는 건, 때로는 논리보다 작은 설렘이다.
어느 날, 무심코 집 앞 골목을 걷다 벽에 기대어 핀 들꽃을 보았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장면인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울컥했다.
바람이 조금 다르게 불었고,
오래 잠들어 있던 내 안의 감각 하나가 조용히 깨어났다.
사람들은 낭만을 말할 때 흔히 거창한 사랑이나 멋진 여행을 떠올린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런 순간 속에서 더 진한 낭만을 느낀다.
아무도 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
바쁘게 흘러가는 삶의 골목 어딘가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꽃을 피우는 어떤 존재.
우리가 사는 시대는 과학과 기술, 효율과 속도로 가득 차 있다.
논리와 데이터가 삶의 기준이 되고,
사람의 마음조차 숫자와 성과로 환산되는 세상.
그러나 그런 시대일수록 ‘낭만’이라는 단어 앞에서
우리는 잠시 멈추어야 한다.
낭만은 단순한 기분이나 분위기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의 무게를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반짝이는 것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이며,
이성보다 직관과 감성을 먼저 믿는 용기다.
- 삶을 지탱하는 힘, 낭만성 - 중에서
그녀를 처음 본 건,
내가 군필 복학생으로 돌아와 ‘낭만주의 문학의 이해’라는 수업을 들을 때였다.
짧은 머리, 단정한 옷차림, 투명한 눈망울,
웃을 때 살짝 패이던 보조개.
첫 만남 이후 우리는 뜨거웠다.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까지 함께 걷고,
술집 골목에서 새벽까지 문학 이야기를 하고,
같은 구절에 밑줄을 그으며 웃던 세월이 2년쯤 흘렀다.
나는 졸업했지만 취업하지 못한 어느 여름날 저녁,
우리는 다시 만나 있었다.
“지금부터 우리, 여기 보이는 맥주집마다 딱 500cc 한 잔씩만 하고 나오는 거다.”
그녀의 제안대로 우리는
학교 앞 ‘동백’에서 시작해,
동신아파트 지하상가 ‘모네’까지
집집마다 맥주 한 잔씩을 마셨다.
밤은 이미 깊었고,
창밖에는 장맛비처럼 굵은 빗방울이 쏟아졌다.
게슴츠레 풀린 눈으로 그녀가 말했다.
“우리 헤어져. 나 너 엄청 좋아하지만, 지금 이대로는 안 돼.
딱 3년. 3년 후, 우리가 좋아했던 사평역에서, 첫눈 오는 날 무조건 만나자.”
그날 그녀는 깊은 키스를 남기고,
비틀거리며 장맛비 속으로 사라졌다.
그 이후 나는 그녀를 한 번도 보지 못했고,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첫눈 예보가 들려오던 주에
그녀에게서 이메일이 도착했다.
“첫눈이 오면, 9호선 사평역 2-6번 플랫폼에서 눈을 감고 시를 외울 것.
오후 6시 58분, 설국행 열차.”
내용은 황당했지만,
나는 그날 이후 손꼽아 첫눈을 기다렸다.
오늘처럼.
- 사평역에서 설국으로 – 중에서
기차역 대합실에서,
떠나는 사람의 등을 오래 보게 되는 이유
간이역 대합실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떠났다.
대합실의 의자들은 너무 많은 결심을 받아내서인지 조금 휘어 보였다.
떠나는 사람의 등이 점이 될 때까지 시선을 거두지 못했으리라.
작별은 늘 남는 사람의 몫이지만, 낭만은 이상하게도 그쪽에서 더 자란다
- 낭만의 장면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