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 노동자는 밥하는 동네 아줌마가 아닙니다”
아이들의 끼니를 책임지는 학교 급식 노동자의 일과 삶
아이들의 식판 뒤 가려진 급식 노동자들의 삶
2026년 1월 29일, 학교급식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인력 배치 기준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고 학교급식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그간 급식 노동자들은 매일 아이들에게 맛있는 끼니를 제공하기 위해 급식 조리실의 뜨거운 열기와 사투를 벌여왔지만 이들의 전문성과 노동의 가치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파업에 참여한 급식 노동자를 두고 한 정치인이 “밥하는 동네 아줌마”라고 표현해 공분을 사기도 했다. 2021년 이후 폐암으로 산업재해 인정을 받은 학교급식 노동자가 178명에 이른다는 사실은, 학교 급식실이 여전히 고위험 노동 현장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명품 급식, K-급식 등 한국 급식의 높은 퀄리티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 뒤에는 매일 달라지는 메뉴에 맞춰 정해진 시간에 대량의 음식을 만들어 내야 하는 급식 노동자들의 숙련된 노동이 존재한다.
『밥 짓는 여자들』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학교 급식 노동자의 일과 삶을 16명의 노동자의 인터뷰를 통해 깊이 들여다본다. 급식 노동자 어머니를 둔 저자는 여성 노동자들이 주로 수행해 온 급식 노동이 어떻게 무시되고 평가절하되어 왔는지를 기록한다. 동시에 그럼에도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말하며 열악한 환경을 바꾸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삶을 세상에 전한다. 급식 보조 인력으로 일하며 현장을 직접 경험한 저자는 어머니의 직업을 쉽게 드러내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를 반추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그들은 '밥하는 아줌마'로 불려야 했을까.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급식 노동은 정말 '여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일까?
학교 급식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확대되었다. 1950년대 구호를 목적으로 도입된 학교 급식이, 1970~80년대에 이르러서는 아동의 신체 발달과 건강 증진을 위한 제도로 그 의미가 변화했다. 이후 1990년대에는 '여성의 가사부담 완화를 통한 사회참여 확대'라는 정책적 목표가 더해지며 제도가 자리 잡았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학교 급식 일자리는 주부 재취업과 기혼 여성에게 적합한 일자리로 홍보되었고, 많은 여성들이 급식 노동 현장으로 유입되었다.
이로 인해 급식 노동은 흔히 '여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학교 급식은 가정에서 하는 요리와는 큰 차이가 있다. 급식 노동은 조리뿐만 아니라 청소, 식재료 관리, 급식실 운영 등 세분화된 업무로 이루어지며, 재료 손질과 조리 방식에는 오랜 경험을 통해 축적된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다. 또한 가정과 급식실에서 사용하는 조리 도구는 크기나 사용 방식이 달라, 그 사용법 역시 시간을 두고 익혀야 한다. 가정에서 네 사람 분량의 나물을 무치는 것과 수백 명 분량의 나물 반찬을 만드는 일은 전혀 다른 조리법을 요구한다. 이렇듯 급식 노동에는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숙련이 축적되어 있다.
전처리와 조리, 배식과 청소까지
쉴 틈 없는 고강도 노동
급식실의 업무는 크게 오전과 오후로 나뉜다. 오전에는 전처리실과 조리실에서, 오후에는 식당과 세척실에서 주된 작업이 이루어진다. 그날 맡은 메뉴에 따라 노동자들의 업무 내용은 달라진다.
조리를 맡은 조리(실무)사들은 출근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영양교사가 주문한 공산품과 채소, 육류의 상태와 수량을 검수한다. 이후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메뉴가 있을 경우 미리 재료를 준비한다.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면 전처리와 조리가 동시에 진행된다. 전처리실에서는 조리에 필요한 재료를 직접 썰거나 기계로 다지고, 조리실에서는 전처리된 재료로 국과 밥, 주찬과 부찬을 만든다. 이 모든 과정은 오후 12시 전후로 시작되는 학생 배식 시간 전에 마무리되어야 한다.
배식이 끝나면 학생과 교직원이 사용한 식판과 국그릇, 수저, 배식대 등을 세척용 약품과 식판세척기로 씻고, 음식물과 쓰레기로 어질러진 급식실 바닥을 청소한다. 짧은 휴식 후에는 조리실과 전처리실, 세척실을 다시 정리하고 청소한다. 휴게실에 딸린 샤워실에서 땀에 젖은 몸을 씻은 뒤, 다음 날 메뉴에 대한 논의를 끝으로 하루의 일과가 마무리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급식 노동자들은 뜨거운 불 앞에서 찌고, 볶고, 끓이며 대용량 음식을 들고 나른다. 매일 반복되는 이 노동은 언제든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오늘도 학생들에게 맛있는 한 끼를 먹이기 위해
기혼 여성이라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회적 편견과 화상, 넘어짐, 베임, 조리흄 노출 등 위험한 작업 환경 속에서도 그들은 매일 급식실로 향한다. 아이들을 먹이는 일이라는 책임과 애정이 그들의 노동을 지탱한다.
“애들이 '조리사님 저 너무 맛있어요. 최고예요.' 막 이러면서 '힘드시죠' 이러면서… 그렇게 하고 또 선생님들도 오셔서 너무 고생하신다고, 수고하신다고 이럴 때 진짜 뿌듯함을 느끼는 거죠. 맛있다고 해주고 고생하신다 그러고 수고하신다고 그러고. 이렇게 더우신데 이렇게 하신다. 그럴 때 진짜 보람을 느끼죠.”
급식 노동자들은 배식 시간마다 학생들을 '딸', '아들'이라 부르며 인사를 건네고, 뜨거운 음식에 데지 않도록 조심하라며 말을 건넨다. 이는 업무 매뉴얼에 포함된 역할은 아니지만, 그들은 학생들을 단순한 급식 대상이 아닌 '돌보고 사랑해야 할 존재'로 인식하며 일한다.
사회적으로 저평가되어 온 학교 급식 노동. 그럼에도 이 일은 단순히 음식을 만들고 배식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급식실은 노동과 돌봄, 그리고 관계가 만나는 공간이며, 그들은 오늘도 아이들과 마음을 나누기 위해 급식실로 출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