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인지하고, 추론하고, 사고하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기호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모리스(Charles William Morris)는 기호학을 “미래의 모든 철학의 시발점”이라고 하였다. 더 나가서 기호학은 학문을 연구하는 도구적 학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기호 측면에서 고찰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이 그 자체로 기호는 아니다. 세상 전체가 기호 과정도 아니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관계들을 기호로 나타낼 수 없다. 그리고 모든 기호는 전달할 재료나 질료를 필요로 한다. 이리하여 어떤 기호도 기호 자체가 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언어 소리는 잡음일 수도 있고, 그림은 색이 얼룩진 덩어리일 수 있다. 예술 작품이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이것들이 예술세계와 예술의 제도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살아 있는 것도 자체적으로 기호는 아니지만, 모든 사건과 사태는 기호로 구성되어 있고, 기호로 이해될 수 있다. 기호가 아닌 것으로부터 기호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기호를 만들어 의미화시키는 흐름이나 맥락도 있다. 어떤 것이 기호가 되는지 안 되는지는 문화적 습관에 따른다. 즉 기호들은 문화 상대적이고, 상이한 문화들은 서로 상이한 ‘코드’를 사용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우리가 만들어놓은 기호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기호란 무엇을 말하는가? (16~17쪽)
퍼스는 “나는 수학, 형이상학, 중력, 열역학, 광학, 화학, 비교해부학, 천문학, 심리학, 음성학, 경제학, 과학사, 카드게임, 남자와 여자, 포도주, 측정학 등 어떤 것도 최대한 기호학적 연구로서 연구하지 않은 적이 없다”라고 했다. (49~50쪽)
소쉬르는 역사 비교언어학 중심이었던 당시 언어학에 반기를 들고, 언어 자체의 내부 구조와 체계를 분석하는 공시태 언어학을 제시했다. 이는 언어를 자의적인 기호 체계로 보고, 기호의 의미는 ‘기표(소리나 문자 이미지)’와 ‘기의(개념)’ 간의 관계가 아니라, 언어 체계 내 다른 기호들과의 차이와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혁신적인 관점은 레비스트로스, 로만 야콥슨 등 수많은 언어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구조주의 언어학의 토대를 마련했다. (97쪽)
로트만에 의하면 텍스트는 창조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나 글은 이미 약속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작가가 소설을 쓰거나 시인이 시를 창작할 때, 그들은 기존의 단어와 문장들을 조합하여 전혀 새로운 이야기, 감정, 또는 아이디어를 만들어낸다. 광고나 예술 작품 역시 마찬가지로, 친숙한 이미지나 소리들을 통해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감각이나 인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195쪽)
에코의 기호학은 모든 문화적 과정들을 의사소통 과정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심지어 미학적인 의사소통 과정도 문화현상 중 하나로 보고 일반적인 모델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기호학은 문화에서의 모든 의사소통 과정을 다루고 있으며 기호학은 바로 문화학이었다. 그래서 그의 기호학 연구 분야는 기존의 기호학자들의 관심 분야보다 휠씬 더 광범위하였다. 즉 음악의 약호, 형식화된 언어, 수학과 화학의 부호와 기호, 문자, 알파벳, 암호, 자연어, 언어학, 논리학, 언어철학, 문화인류학, 심리학, 시각적 의사소통, 텍스트이론, 사물의 체계, 이야기 구조, 미학적 텍스트, 몸짓언어, 후각기호, 수사학, 맛의 약호, 동물기호, 예의범절, 사회계급, 자연적 기호, 신화와 전설, 문화유형, 가족 체계, 문화적 약호, 일기예보, 예감, 소변검사, 상처 자국 등이 그의 기호학 연구 대상이다. (208~2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