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꿈을 건 활시위
취미를 넘어 나를 수련하는 길이 되다
▶ 서른 넘어 다시 겨눈 꿈, 삶을 단련하는 전통 활쏘기의 세계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오래된 꿈 하나. 그러나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용기 내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살짜쿵 활쏘기』는 그 꿈을 쉽게 놓아버리지 않은 한 청년의 이야기이자, 전통 활쏘기를 통해 스스로를 단련해온 시간의 기록이다.
역사학도를 꿈꾸며 자란 김경준 저자는 어린 시절 즐겨 보던 사극 영화와 드라마 속 영웅들의 활쏘기 장면에 매료되어 활쏘기에 빠져들었다. 이순신과 주몽을 동경하던 마음은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서른을 넘긴 나이에 활을 잡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담담하고도 진정성 있는 개인의 활쏘기 여정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올림픽에서 양궁 국가대표 선수가 메달을 휩쓸 때마다 사람들은 열광하며 ‘우리는 활의 민족’임을 자부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 전통 활쏘기인 국궁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까. 현실의 국궁은 여전히 일부 동호인의 세계에 머물러 있으며, 그 가치에 비해 충분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국궁을 단순한 스포츠나 향토 취미가 아닌, 역사와 예절, 수련의 정신이 어우러진 전통 무예로 바라본다. 그리고 활과 화살, 사법과 활터 문화 전반을 아우르며, 우리가 무심코 사용해온 ‘활의 민족’이라는 말의 진짜 의미를 다시 묻는다.
▶ 활터에 남아 있는 과거, 활쏘기로 역사를 기억하다
『살짜쿵 활쏘기』에서 활터는 단순히 활을 쏘는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각 활터에는 선열들의 애국애족 정신과 시대의 흔적이 켜켜이 남아 있으며, 활쏘기는 그 역사를 몸으로 이어가는 행위와 마찬가지이다. 저자는 전국의 활터를 직접 찾아다니며 그곳에 깃든 역사와 의미를 되짚는다. 특히 한산도는 저자에게 있어 국궁에 대한 로망을 처음 품게 한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를 찾을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다. 그는 힘들 때면 한산대첩의 현장을 방문해 장군이 섰던 자리에 서보며 힘을 얻는다.
저자는 가지고 있는 두 자루의 각궁 중 하나에 홍범도 장군의 이름을 따 ‘범도’라는 이름을 붙였다. 각궁을 장만할 당시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소식을 접한 그는 역사학도로서 분노를 느꼈고, 일상 속에서 장군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한 방식으로 활에 그 이름을 붙인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홍범도 장군의 이름을 딴 활쏘기 대회도 직접 기획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저자에게 활쏘기는 개인적인 취미를 넘어 역사를 현재로 불러오는 실천의 방식이다. 활 한 자루, 활터 한 곳에는 저자가 존경하는 인물과 지켜내고 싶은 가치가 오롯이 담겨 있다.
▶ 활쏘기를 사랑하기에 던지는 불편한 질문
저자는 전통 활쏘기를 사랑하는 만큼, 활쏘기 공동체가 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다. 『살짜쿵 활쏘기』에는 활터에 고착된 잘못된 문화와 관행을 향한 저자의 날카로운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초보자나 젊은 궁사를 낮춰보는 태도, 활터에 뿌리내린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분위기는 상호 존중과 예의를 중시하는 전통 무예로서의 활쏘기 정신을 훼손하는 요소들이다.
몇몇 활터에서 한복 착용을 제한하는 현실 역시 비판의 대상이다. 저자는 국궁 대회장에서 흰색 상·하의만을 요구하는 현재의 복장 규정을 짚으며,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활을 쏘던 궁사들의 모습을 다시 떠올린다.
비판의 화살은 활터 내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저자는 전통 활쏘기가 국가무형유산임에도 불구하고 정책적·제도적으로 충분한 보호와 지원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특히 국궁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 ‘궁도’라는 용어 사용, 탁상행정으로 추진되는 관련 법안과 정책은 우리 전통 무예의 본질을 왜곡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의 날카로운 비판에는 전통을 사랑하는 마음과 더 나은 활터 문화를 바라는 진심이 깔려 있다. 이는 활쏘기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함께 고민해야 할 질문이기도 하다.
▶ 나의 삶을 바꾸는 무기, 활쏘기가 가르쳐준 삶의 태도
수백 수천 발의 화살을 쏘며 저자는 조급함을 내려놓는 법과 대기만성의 의미, 관조하는 태도를 배우고 있다. 미련을 버리고 도를 닦는 심정으로 사대에 서며 마침내 다섯 발의 화살을 모두 과녁에 꽂는 초몰기의 기쁨을 맛본다. 활 한 발을 쏘는 데도 바람의 방향, 시선, 활과 화살을 쥐는 감각 모두 신경 써야 한다.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화살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간다. 활을 쏘며 얻은 이 같은 배움은 활쏘기를 넘어 삶에서의 태도와도 연결된다.
활을 쏜다고 해서 성격이나 인생이 단번에, 극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저자는 활쏘기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그 가치를 삶 속에서 실천해 나가는 일이 중요함을 배웠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활을 쏘며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자신을 느끼고 있다. 그에게 활쏘기는 평생 이어지는 공부이자, 삶을 단련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저자는 오늘도 활을 들어 어제보다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조용히 사대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