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세계
허문화 시인의 시 세계를 이루는 토대이자 주제는 모성을 바탕으로 한 가족애이다. 여성은 임신, 출산, 육아, 자녀교육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모성애를 경험하는데, 시인은 그것을 가족 사랑으로 확대하고 심화한다. 모성이 본성적이라면 가족애는 사회적이다. 따라서 모성의 가족애는 사랑의 본성이 환경 조건 속에서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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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화 시인의 가족애는 가문을 내세우는 전통적인 가족주의와 다를 뿐만 아니라 여성의 임신이나 출산이나 육아와 관련된 범주를 넘는다. 개인적인 것은 물론 사회적인 것이어서 다층적이고 복합적이다. 또한 여성으로서 갖는 운명 인식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자로서 정체성과 주체성을 견지한 것이다. 따라서 시인의 가족애는 자본주의 체제에 함몰된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이기적 개인주의를 극단적으로 긍정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는 가치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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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애의 개념은 친족 관계에 있는 구성원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허문화 시인의 인식은 그 범주를 넘는다. 모성의 정서적 친밀감과 소속감으로 사회 구성원과 연대한다. 개인적인 차원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 공동체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시인이 “알바천국에 알바만 있고 천국은 없다는 것을/취준생이 되면서 알게 된”(「통계에 잡히다」) 것이나, 직장을 잃자 “아내와 딸들의 얼굴이 명치끝 통증”(「잃다」)을 느끼는 것이 그 모습이다. 우리 사회의 취업 문제와 실직자의 아픔을 가족애로 알려주는 것이다.
시인은 “봄날 당근밭에서 아이들 등록금을 캐냈고/이모작 콩밭에서 두 아들 결혼자금을 타작했던/생산의 텃밭”(「산업단지 OUT」)이 산업단지의 회색 시멘트로 덮이자 주민들과 함께 맞선다.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로 살처분된 동물들을 안타까워하며 “다른 생을 위해 묻힌/익명의 숨탄것들”(「순장」)을 품는다. 콘크리트가 능멸하는 바람에 강물이 흐르지 못하는 상황을 “내 어머니의 자궁은/하루하루 타들어”(「저 강의 불임」) 간다며 환경 문제도 가족애로 제기한다.
― 맹문재(문학평론가 · 안양대 교수)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