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의 감각, 성장의 언어
“나는 항상 두 세계의 경계에 자리한 느낌이었고, 그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미국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작가는 가족의 나라인 한국과 자신이 나고 자란 미국, 한글과 영어, 한국인과 미국인 사이에서 살아왔다. 경계에 서 있었기에 겪었을 혼란과 질문, 그리고 그 시선으로 포착한 삶의 층위와 존재에 대한 물음이 이 작품의 바탕이 된다.
작가가 지닌 ‘경계인의 감각’은 정제성의 답을 찾아 헤매는 청소년기의 시간과 맞닿아 있다.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것 같은 허전함, 설명되지 않는 공허함, 어디에 서 있는지 묻게 되는 수많은 순간들. 작가는 이러한 청소년기의 정서를 날 선 감각으로 섬세하게 포착해 따뜻한 성장의 언어로 풀어냈다.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용기
경계에 선 청소년이 겪는 감각은 성장의 과정이지만 체념하거나 회피하고 싶은 통증이다. 하지만 회피한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더 깊이 숨겨질 뿐이다.
작가는 『달콤쌉쌀 시간 한입』의 주인공 마야를 통해 혼란과 질문을 외면하지 말고 똑똑히 바라보자고 말한다. 할머니에게 이끌려 떠난 반강제적인 시간 여행은 마야를 묻어 두었던 가족의 상처와 상실 앞에 데려다 놓는다. 금기처럼 덮여 있던 기억들, 말해지지 않았던 이야기들, 그리고 어딘가에 남아 있을 아빠의 흔적. 마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가족의 지난날을 따라가며 아빠의 흔적을 찾아 단서를 모은다. 엄마와 자신 사이에 오래도록 흐르던 차갑고 공허한 기류의 근원을 알아내기 위해 시간 여행을 멈추지 않는다.
청소년기에 맞닥뜨리는 혼란과 질문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피해 버릴까. 모른 척할까. 아니면 아프더라도 마야처럼 온몸으로 마주해 볼 것인가?
달콤하고도 쌉싸름한 우리들의 시간
시간은 달콤하기만 하지 않다. 기쁨과 설렘 사이사이에 설명하기 어려운 쓴맛과 공허함이 스며 있고, 상실과 오해, 말하지 못한 마음과 끝내 닿지 못한 질문들까지 그 모든 것이 뒤섞여 비로소 우리의 시간이 된다.
『달콤쌉쌀 시간 한입』은 이 쓴맛을 지워 버리거나 덮어 두지 않는다. 달콤함과 쓴맛이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그 시간을 어떻게 건너갈 것인지 묻는 시간 여행 판타지다.
달콤한 한식 한 입을 머금는 순간 과거로 빨려 들어가는 이 이야기는 도망을 위한 상상이 아니라,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기 위한 모험에 가깝다. 마야는 시간 여행을 통해 잊힌 기억과 숨겨진 비밀, 말해지지 않은 상처가 남긴 흔적을 하나씩 마주한다. 달콤했던 순간만이 아니라 쌉싸름한 시간까지 통과하며, 자신의 현재를 이루는 모든 시간을 받아들인다.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독자의 시간은 계속 흐른다. 그리고 그 시간 역시 달콤하기도, 쌉싸름하기도 할 것이다. 이 작품은 그 모든 맛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이 결국 우리의 이야기임을 분명하게 말한다.
한식의 맛처럼 겹겹이 우러나는 이야기
이 수수께끼 같은 시간 여행 판타지가 오래 남는 이유는 이야기가 한 번에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뱃속뿐 아니라 마음의 허기를 달래 주는 한식처럼, 이야기의 맛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우러난다. 과거와 현재, 기억과 현실, 말해진 이야기와 끝내 숨겨진 이야기들이 시간 여행을 따라 겹겹이 쌓이며 맛을 더한다.
이 다층적 구조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시간 여행 중 우연히 만난 소년, 제프의 등장이다. 마야는 제프와 조금씩 가까워지며 서로의 아픔과 빈자리를 알아본다. 이 만남은 가족의 과거에 머물던 이야기를 현재의 관계와 미래의 가능성으로 확장시키며 이야기에 또 하나의 층위를 보탠다. 마야와 제프의 감정은 과거의 기억 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두 사람이 현실에서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떤 미래를 선택하게 될지가 이야기에 긴장과 여운을 남긴다.
이처럼 『달콤쌉쌀 시간 한입』은 하나의 맛으로 설명되지 않는 서사다. 시간 여행, 가족의 비밀, 새로운 만남,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마야의 현재가 차곡차곡 겹쳐지며 이야기는 끝내 감칠맛을 완성한다. 그래서 이 판타지는 읽을수록 서서히 맛이 살아나는, 한식의 맛처럼 겹겹이 우러나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