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디지털 감시 사회에서의 윤리적 선택
AI가 일상을 지배하는 미래 도시. 가난한 난민 소녀 야세민은 친구의 사생활을 팔아넘기며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 그러나 ‘피욘’이라는 감시 앱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그녀는 스스로의 잘못을 마주하고, 더 이상 누군가의 도구로 살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감시와 보호의 경계가 흐려진 시대에 무엇이 윤리적 선택인가를 묻고 있으며, 우리가 손에 쥔 기술이 얼마나 쉽게 우리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2. 부조리한 사회 구조에서도 지켜야 할 청소년의 권리와 정의
상류층이 사는 그린 구역과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오렌지 구역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그린 구역의 사람들은 감시를 ‘안전’이라 부르고, 오렌지 구역의 사람들은 그 감시조차 받지 못한 채 늘 위험과 범죄에 노출되어 있다. 전쟁을 피해 도시로 들어온 이주 난민 야세민은 꿈꾸는 마음과 총명한 재능을 지녔지만, 차별과 편견의 낙인은 그녀의 마음에 계속된 상처를 남긴다.
“오렌지 구역에 산다는 사실은 마치 이마에 새겨진 듯하다. 아니면 피부에 새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어디를 가든 우리는 오렌지색 네온 불빛처럼 빛난다.”_본문 013p
딜게 귀네이는 사회에서 소외된 청소년이 겪는 불평등의 현실을 야세민의 일기를 통해 내면의 목소리로 섬세하게 그려 낸다. 그러나 불행에 머물도록 하지 않고 야세민을 친구의 비밀을 팔아넘긴 가해자에서 진실을 폭로하는 용감한 목소리로 성장시킨다. 감시 시스템의 불의를 고발하며 수많은 청소년들의 연대를 이끌어 내는 야세민의 여정으로 배신에서 연대로, 두려움에서 책임으로 나아가는 성장을 기록하였다.
이 작품은 불평등과 통제가 일상이 된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권리와 존엄을 끝까지 지켜 나갈 수 있는 용기의 서사이다.
3. 변호사로서의 명확한 문제의식과 끝까지 몰입하게 만드는 힘
변호사인 딜게 귀네이는 이 작품을 통해 기술과 인간, 보호와 통제, 권리와 책임의 경계를 치밀하게 탐구하며, 감시 사회 속에서 개인이 감당해야 할 윤리적 선택의 무게를 묻는다. 작가의 법률가적 통찰이 작품의 설정과 대사 곳곳에 스며있으며, 법적 모순과 도덕적 아이러니까지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더불어 『피욘』은 명확한 문제의식과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끝까지 몰입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 작품이다. 감시와 보호, 정의와 죄책감이 교차하는 서사 속에서 독자는 한 소녀의 운명을 밝히는 마지막 퍼즐 조각에 점점 가까이가고, 끝내 섬세한 암시를 통해 진실을 알게 된다. 결말을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 여백 속에서 독자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경험한다.
『피욘』은 법률가의 사유와 이야기꾼의 상상력이 결합된 현대 사회의 윤리 보고서이자, 감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