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정을 함께할 이들에게 간곡히 부탁해본다. ‘떠나면 달라질까’에 대한 질문에 간결하고 짧은 정답을 찾기보다 형용사와 부사, 동사가 가득한 나만의 힌트를 찾길 바란다. 완전한 문장이 아니어도 좋다. 다만 주어가 ‘나’라는 것만 잊지 않으면 된다.
이 여정을 마칠 땐 이슬기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남는 것이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주인공으로 끝나는 여정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 방랑의 첫걸음을 떼본다
- [프롤로그] 미움이 보낸 여행 - 中
그렇게도 목말라하던 성취가 여기에 있었다. 이곳에서의 성취는 꼭 어떤 숫자, 등급, 명사에 도달하지 않아도 충분히 맛볼 수 있었다. 내가 아는 성취는 쓰디쓴 맛을 9번 먹고 견딘 후에 1번 오는 달콤함이라 배웠는데, 이곳에서의 성취는 그 반대였다. 9번의 쉬운 달콤함에 취한 여행 첫날 밤, 나는 혼자 이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여행을 하면 바뀔 수 있을 것 같아.
나도 뭔가는 달라질 것 같아. 여행 나오길 정말 잘했다.’
- 이곳에서는 너무 쉬운 달콤함 - 中
어쩌다 보니 제주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새해이다. 꼬박 2년을 산 건 아니지만 제주도에서 떡국을 두 번이나 먹었다. 이제는 제주 사투리도 제법 알아듣고, 귤은 돈 주고 사 먹지 않는 1년 2개월 차의 제주도민이 됐다. 새해는 밝았는데, 난 밝지 못했다. 큰 고민 덩어리가 마음속에 뿌리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제주에 봄이 오는 4월이 되면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의 계약 기간도 1년을 꽉 채운다. 벌써 부동산 사무실에서는 문자 한 통이 왔다. 1년 더 계약하고 싶으면 몇 월 며칠까지는 말을 해줘야 한다고. 난 이 방에 더 있을지 고민이 된다기보다 제주에 더 있을지 고민이 됐다.
- 이만하면 됐다 -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