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세계
박미현 시인은 “누군가의 슬픔에 기대어 울기도 했지”(슬픔에 대하여)만, 결코 슬픔에 함몰되지 않는다. 오히려 “슬퍼할 의무와 책임”(「작은 시」)을 인식할 정도로 슬픔을 껴안는다. 시인은 슬픔을 감상적이거나 비관적이거나 염세적으로 대하지 않고, 슬픔으로 인해 소외를 느끼지 않는다. 슬픔을 부정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슬픔의 존재 자체를 인정한다. 슬픔을 자기반성이나 극복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최선을 다해 동행한다.
슬픔에 대한 시인의 자세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으로 한정할 수 없다. 시인은 슬픔을 발생시키는 환경과 상황에 대해 주체적으로 대응한다. 슬픔을 타기하기보다 슬픔을 발생시키는 요인을 주시하는 것이다. 작품들에 나타난 슬픔은 시인의 감정 형태가 아니라 판단 형태이다. 시인이 바라는 희망과 열망이 여실히 반영된 것이다.
(중략)
시인의 슬픔 인식은 인간 존재의 근원은 물론 사회적 존재성을 일깨워준다. 시인을 둘러싸고 있는 시대와 사회에 적응하는 사람들의 삶의 의미를 인지시킨다. 결국 시인은 슬픔의 서정성을 토대로 사회학적 상상력을 추구하는 것이다.
―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