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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유럽 무대에서 외교로 조선독립을 알리다


  • ISBN-13
    979-11-6861-496-3 (03990)
  • 출판사 / 임프린트
    산지니 / 산지니
  • 정가
    25,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5-08-15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정상천
  • 번역
    -
  • 메인주제어
    인물: 역사인물, 정치인, 군인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서영해 #독립운동가 #위인 #전기 #독립운동 #일제강점기 #외교 #외교관 #인물: 역사인물, 정치인, 군인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52 * 225 mm, 368 Page

책소개

▶ 외교로 항일투쟁하며 조선독립을 알린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관련 자료 323건 686점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

광복 80주년을 맞아 총과 폭탄 대신 펜과 종이를 들고 싸운 서영해의 생애를 다룬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개정판이 출간됐다.

외교관이자 언론인이자 소설가였던 서영해는 일생을 조선 독립운동에 바쳤고 서방 세계에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는 데 힘썼다. “미국에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할 정도로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양대 외교 축이었지만, 안타깝게 역사에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이 책은 그동안 숨겨진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발굴해 정리했다.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정부수립시기까지 세계사와 현대사의 굴곡이 서영해의 삶에 투영되어 있다. 서영해는 당시 유럽사회에 외교 중심지였던 프랑스 언론에 끊임없이 조선을 알렸고 여러 국제회의에 참가해 유창한 불어실력으로 조선이 직면한 어려움을 알리는 활약상을 펼쳤다. 그는 도산 안창호가 일경에 체포되자 유럽에서 맹렬한 석방교섭을 하며 국제 여론을 조성해 일본 정부를 압박했다. 비록 석방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으나 운영하는 고려통신사의 존재감이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다. 

저자는 국내에 부족한 서영해의 자료를 직접 발굴하고 가족과 친척 관계자를 만나 서영해의 삶을 짚어간다. 책에는 서영해가 쓴 유고 글과 프랑스 현지 언론에 기고한 글, 인터뷰 등을 모아 번역해 실었다. 방대한 분량이지만 독자들에게 글로 서영해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이번 개정판에는 2025년 6월 서영해 관련 자료 323건 686점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내용과 함께 저자가 최초로 발견한 남목청 사건 당시 김구 총상 사진과 발견 과정, 서영해의 손녀인 수지가 쓴 『수지가 만난 세계』의 한국판 출간, 서영해 관련 언론 기사 등이 새롭게 수록되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서영해의 숭고한 정신과 함께 더 많은 독립운동가가 발굴되고 세상에 알려져 독립운동을 한 선조들의 정신이 후대에 오랫동안 전해지길 바란다. 

 

▶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유럽 외교관이면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언론인이자 소설가

서영해는 1902년 부산에서 태어나 17세의 나이로 3·1 독립운동에 참가했고 수배 대상자가 된다. 중국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의 막내로 활동하다 임시정부의 권유로 1920년 12월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임시정부에 유창한 외국어 실력을 가진 인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부친이 부쳐준 생활비로 근근이 공부할 수 있었지만 나중에는 이마저도 끊겨 재정적 지원 없이 어렵게 유학생활을 마친다. 이후 1929년 임시정부 외무부의 지시로 프랑스 파리에 고려통신사(Agence Korea)를 설립하고 통신사를 통해 일본의 한반도 침략상을 유럽 전역과 이집트, 아프리카에까지 알렸다. 일본에 의해 왜곡된 한국 이미지를 바로잡고 참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력하며 우리나라의 독립을 향한 열망을 보여주었다.

불어로 장편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과 민담집 『거울, 불행의 원인』 등도 집필하여 한국의 역사와 문화 또한 유럽에 알리려고 노력하였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은 프랑스 언론의 높은 관심으로 1년 만에 5쇄를 인쇄할 만큼 주목을 받았다.

 

▶ 서영해의 글로 독립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그려본다 

서영해는 오랜 기간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국내 활동기록이 적다. 또한 해방 후 정치적으로 승자였던 이승만을 따르지 않고 김구를 추종하였다. 서영해는 타국에서 외롭게 조선독립을 위해 투쟁했지만 해방 이후 조국으로부터 환대도 받지 못했고 오히려 김구를 추종했다는 이유로 국내에서는 설자리를 잃었다. 아쉽게도 서영해는 말년의 행적이 불확실하다. 저자는 책을 내기 직전까지도 서영해의 마지막을 수소문했지만 정확하게 어디서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서영해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그릴 수 있는 글이 남아 있다.

광복 80주년과 서영해 자료의 국가등록문화유산 지정이라는 뜻깊은 해를 맞아 출간된 이번 개정판을 통해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정신이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기를 기대한다.  

목차

개정판 발간사

들어가는 글 

추천사: 나의 할아버지를 찾아서_수지 왕 

 

01 출생과 성장, 상해로 망명 가다 

부산 한약방집 아들 

아버지 ‘서석주’, 부산에서 유명했던 한의사 

작은 거인의 3・1 독립운동 참여 

상해로 망명, ‘임정의 막내’가 되다

 

02 혁명가의 도시 파리에서의 고단한 유학생활 

프랑스 유학, 고난의 여정 

상해 출발, 파리 도착 스케치 

혁명과 망명가의 도시, 파리 

 

03 임시정부 주불특파위원 외교로 항일투쟁하다 

대학진학과 독립운동의 시작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 전개 

고려통신사 설립 

한국인이 쓴 최초의 불어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

한국 민담집 『거울, 불행의 원인』

본격적인 대유럽 독립운동의 전개

서영해의 멘토, 인권운동가 세브린 여사 

 

04 유럽의 격동기에도 독립운동을 이어가다 

이승만과 서영해, 가깝고도 먼 사이 

오스트리아 여인과의 결혼과 이별 

프랑스 레지스탕스 운동 참여

서영해의 언론활동 평가

 

05 해방 후 통일된 정부수립을 외치다

해방 이후 좌우이념 대립과 서영해

귀국 후 서울에서의 생활

한국 여인 황순조와의 결혼, 짧은 만남 긴 이별

국내정치에 대한 환멸과 프랑스로의 재출국

상해 인성학교와 서영해

 

06 서영해가 남긴 사랑, 사람, 사상

황순조의 사부곡

서영해의 오스트리아 손녀, 수지의 한국 뿌리 찾기 

국립중앙도서관의 ‘영해문고’

김구 선생과 남목청 사건

서영해 자료, 국가등록문화유산 지정

서영해의 이념과 사상

 

나오는 글

 

부록1 「해외에서 지낸 십오성상(十五星霜)을 돌아다보며」-자필 유고

부록2 서영해 프랑스 언론 기고문과 관련 자료 

부록3 서영해 연보(年譜)

도판출처

참고문헌

본문인용

P.12  서영해의 활동범위는 파리에 한정되지 않고 벨기에, 제네바, 스페인 등 유럽전역과 때로는 중동의 이집트,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까지 광범위하였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서 ‘파리의 독립운동가’라기보다는 ‘유럽의 독립운동가’라고 불러야 옳을 것이다.

 

P.54  서영해가 다른 일반 유학생과 구별되는 점은 그가 단순히 유학만한 것이 아니라 임시정부의 주불대표로서 활동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프랑스에 있는 유학생들과 임시정부 간의 공식적인 연결통로였다. 주불유학생들은 서영해를 통해 임정의 소식을 듣고, 그는 유학생들의 유학현황을 임정에 보고하고 그들을 결집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p.120  만약 서영해가 시류에 편승하여 권력의 편에 섰더라면 안락한 생활이 보장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타협을 모르고 오직 한 길, 조국광복이라는 대의를 위해 유럽에서 혈혈단신으로 고군분투하며 국제사회에 한국이라는 나라와 한국인이라는 존재를 알리기 위해 그의 청춘을, 그의 인생을 다 바친 사람이었다.

 

p.208  이번에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는 “일제강점기 유럽에서 독립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서영해가 프랑스 파리에 고려통신사를 설립(1929년)하고 고려통신사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교 특파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유럽 각국에 일제의 침략상을 국제 사회에 고발하는 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일원으로 한국 독립을 위해 외교 활동을 수행하였고, 관련 유품이 해외에서의 독립 운동의 역사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기 때문”이었다.

 

P.216  그는 오직 한평생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염원했던 순수한 민족주의자였으며, 공산주의에 반대한 민주주의자, 약탈적 자본주의를 싫어했던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회주의자였다.

 

P.226  이제 모든 걱정, 근심 내려놓고 그의 두꺼운 안경 너머로, 그리고 역사의 망각 뒤에서 평화로이 잠들기를 기원한다. 자랑스러운 후손들이 그의 뜻을 기리고, 그의 위업을 언젠가 완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평

수지 왕(서영해의 손녀) 

솔직히 나는 한국의 독립운동에 대해서, 그리고 서영해가 프랑스에 망명해서 벌였던 활동의 중요성에 대해서 전혀 몰랐었다. 나의 아버지 스테판은 오랜 병마의 고통 끝에 2013년 1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내가 추도사를 읽어야 했기에, 나는 할아버지에 대해 새로 발견한 내용들을 추가하였고, 아버지가 가시는 마지막 길에 그의 아버지(서영해)의 삶에 대해 알려드렸다. 

나는 선친이 처음으로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했을지 여전히 궁금하다. 아마 그는 깊은 감동을 받았을 것이고, 그의 아버지에게서 그 자신의 성격과 유사성이 매우 많았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흐르는 물에 과감히 역행해서 헤엄치는, 그리고 지칠 줄 모르고 열심히 일하는 대단한 이상주의자였고, 평화수호자였으며, 반파시스트이자 섬세한 예술적 감각을 지닌 애국자였을 것이다._「나의 할아버지를 찾아서」

저자소개

저자 : 정상천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과를 졸업, 프랑스 파리 제1대학(팡테옹-소르본느)에서 역사학 석사(DEA)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상공부와 통상산업부에 근무했고 1998년부터 외교통상부에 15년간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한국과 프랑스 관계 연구에 매진했다. 이후 산업통상자원부와 대통령직속국가균형발전위원회, 한국지역난방공사(상임이사)를 거쳐 현재 안동시설관리공단에 재직 중이다.
역사에 대한 열정과 관심으로 꾸준히 역사서를 읽고 공부하며 집필을 계속하여 ‘일요일의 역사가’로 불리기도 한다.
주요 논문으로 「1886~1910간 한·불 통상관계가 미약했던 원인에 대한 역사적 고찰」, 「일제강점기(1910~1945) 동안의 한국독립운동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정책」, 「프랑스 소재 외규장각 도서반환 협상 과정 및 평가」 등이 있다.
대표 저서로 『아시아적 관점에서 바라본 한불통상관계』 (파리 출간), 『불교 신자가 쓴 어느 프랑스 신부의 삶』, 『나폴레옹도 모르는 한-프랑스 이야기』, 『한국과 프랑스, 130년간의 교류』가 있고, 역서로 『벽이 없는 세계』, 『지리로 보는 세계정세』, 『보통사람의 정치학』 등이 있다.
'산지니'는 가장 높이 날고 가장 오래 버티는 우리나라의 전통 매입니다. 갈수록 힘들어지는 출판 환경과 지역출판의 여건 속에서 오래 버티고자 하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행복과 공동체의 행복이 함께 이루어질수 있어야 합니다. 산지니의 책들이 나와 공동체의 소외를 극복하고 자본주의사회의 여러 중독에서 해방되어 행복해지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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