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씨가 맑습니다. 따라 해 보세요.”
“오늘 날씨가 맑습니다.” 시키는 대로 따라 했다.
“여기는 어디죠?”
“병원이요.”
“오늘 날짜가 몇 월 며칠이죠?”
“12월 2일이요.”
“양팔을 들어서 10초 동안 유지해 보세요.” 양팔을 올리니 왼팔이 툭 떨어졌다. “양다리를 들어서 10초간 유지해 보세요.” 왼쪽 다리는 들어지지도 않았다.ㅡ10쪽ㅡ
삶이란 참으로 예측 불가능한 것. 밤새 안녕이라고 자다가 중환자실에 실려 가기도 하고 무심코 지나쳤던 도서관이 삶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초 중 고등학교를 누비며 바느질을 가르치는 나의 모습은, 과거의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단 하나, 내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가치였다.ㅡ18쪽ㅡ
엄마는 그 구멍에 입을 대고 피고름을 빨았다. 있는 힘껏 빨아 사발에 뱉어내기를 반복했고 더 이상 피고름이 나오지 않자 엄마는 상처 위에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였다.
온몸 힘주어 비틀고 땀 흘리며 울었던 나는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다. 잘. 끝났다는 안도감에 깊은 잠 속으로 빠졌다. 아침이 되자 얼굴은 본래의 크기로 돌아와 있었다. 열도 내리고 통증도 사라졌다.
턱밑을 만져보니 반창고가 붙어있었다. 간밤의 그 악몽은 꿈이 아니었던 것이다. 만원 버스를 타고 다니던 학교도 며칠 결석했다. 따스한 아랫목에서 뒹굴거리며 흰 죽을 받아먹던 그 겨울.
지금도 턱 아래에는 1cm 정도의 흉터가 남아있다. 가끔 엄마가 그리울 때면 한 번씩 만져본다.ㅡ29쪽ㅡ
어린 시절 흡족한 사랑을 받고 자라는 것은 화분 맨 밑바닥에 양질의 영양소를 저장해 두는 일인 것 같다. 돈이 제갈 량이고 많은 이들의 삶의 목표일지라도 아이들은 돈만으로 크지는 않는다. 열 살 이후의 궁핍한 삶이 나를 조숙하고 우울한 아이로 키웠어도 나를 반듯하고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게 한 것은 아버지의 무한 사랑 덕분이다.
그런 아버지의 환한 미소를 다시 만나고 싶다.ㅡ31쪽ㅡ
꿈에 엄마가 왔다. 엄마 돌아가시고 삼 년 만이었다. 엄마의 얼굴은 평안했다. 엄마가 나를 보고 미소 지었다. 비로소 나의 마음도 녹아내렸다. 원망도 죄책감도 함께. 나는 그제야 엄마 유품정리 때 가져온 모시 홑이불과 모시적삼을 꺼냈다. 엄마가 오래 입어 야들야들해진 적삼도 가능하면 최대한 다 말랐다. 그리고 모시 홑보를 여러 개 만들었다. 그 모시 홑보 이름은 〈나의 어머니 공연순 여사〉다. 그중 한 개를 미국에서 결혼해 사는 엄마의 첫 손녀인 조카에게 가져다주었다. “이 작품의 이름은 너의 할머니 공연순 여사야.” 하면서.ㅡ53쪽ㅡ
큰딸은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난 후 오래 해외에서 살았다. 어느 날 돌아온 아이의 가방에 매달린, 내가 만들어 준 조각보 잉어 한 마리. 그걸 보는 순간 눈물이 났다. 내색은 안 했어도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다시 이탈리아로 떠나면서 조각보주머니 티셔츠를 거의 다 가져갔다. 타국에서 혼자 견디는 방법이었을 것이다.ㅡ60쪽ㅡ
언젠가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을 때 내가 만들어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조각보주머니가 달린 티셔츠’가 아이들 곁에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딸아이가 찍어둔 나의 짧은 동영상들이 작은 조각 천들이 모여 아름다운 무늬를 이룬 조각보처럼 아이들의 추억 속에 자리잡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 아이들이 엄마를 기억하는 방법이다.ㅡ82쪽ㅡ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하루 종일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물어본다. 그 이유는 아이의 일상이 궁금하기도 하려니와 혹시 왕따는 안 당하는지 다투거나 맞거나 하는 일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저녁 온 가족이 모여서 하루의 일과를 나누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그 습관은 우리 가족을 결속하는데 아주 중요한 일이 되었다.ㅡ121쪽ㅡ
“학원에서 미리 다 배워온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막 돌아다녀요.”
선생님의 말씀을 받아먹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셋째는 선생님의 말씀에 집중했다. 학원에서 미리 다 배워 와서 학습 내용을 아는 아이들이 많지만 그냥 건너뛰지 않고 열심히 설명하고, 설명을 열심히 듣던 셋째를 예뻐했던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선행학습은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학습일까. 공교육을 밀어내는 역할이라면 재고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ㅡ128쪽ㅡ
6월 모의고사를 보고 난 후 셋째가 과학 한 과목이 영 불안하다며 서울대를 포기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누가 서울대 가라고 했나?’ “서울대도 훌륭하지만 연고대도 훌륭하지.”
셋째는 서울대를 포기해서 고3 내내 스트레스 없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안 가고 스트레스 없다면 그것이 더 나은 선택 아니겠나?모두가 서울대를 갈 수는 없는 일이지. 아이가 갈등하고 있을 때 부모는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적절하게 조언만 하면 된다. ㅡ133쪽ㅡ
수능 끝나는 날 셋째가 그랬다. 게임하지 말라는 말 안 해주셔서 고마웠다고. 고3이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겠나. 잠 좀 더 자는 것보다 스트레스를 날리는 게 중요하지. 어떤 상황이든 나는 아이가 행복하면 그게 더 좋았다. 결과나 인생은 본인이 알아서 하는 거니까.ㅡ134쪽ㅡ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생활고에 궁여지책으로 유치원비를 아끼려고 다른 아이들보다 한 살 먼저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래서 최연소 박사, 최연소 교수의 수식어가 따라왔다.ㅡ137쪽ㅡ
수능 끝나고 셋째가 누나들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엄마는 왜 공부하라는 소리를 안 하셨을까. 그게 그렇게 불안해서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엄마의 고도의 수법은 아니었다.ㅡ138쪽ㅡ
아이를 칭찬하는 방법 중에 머리 쓰다듬고 등을 두드려 주는 일이 효과가 좋다고 한다. 등을 두드려 주면 옥시토신 분비를 촉진하여 부모와 아이 간의 유대감을 강화시킨다고 한다. 나는 수시로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두드려주었다. 티브이를 보아도, 게임을 해도, 방바닥에 누워 뒹굴 거려도.ㅡ140쪽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