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논과 밭 그리고 아파트가 함께 공존하던 ‘강남’이었다.
수유리와 서교동을 거쳐 마침내 역삼동 개나리아파트까지!
서울 토박이 도시탐험가의
‘당신이 몰랐던 진짜 강남 이야기’
가장 젊은 서울, 강남
한강 이남 지역을 넘어 한국사회를 압축한 고유명사가 되다
서울의 자치구 중에서 가장 최근에 서울로 편입이 된 지역은 강남구와 서초구이다. 경기도 광주군과 시흥군에 속했던 두 지역은 1963년 1월 1일부로 서울이 되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강남구와 서초구는 서울이 된 지 60년이 갓 지난, 서울에서 가장 젊은 동네인 것이다. 지리적으로 한강 남쪽을 의미했던 강남은 언제부터인가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는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끝 모르고 올라가는 초고가의 부동산과 성공적 입시를 보장하는 교육환경을 상징하는 개념으로서의 고유명사 ‘강남’이 한국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다. ‘강남’은 가장 늦게 서울이 되었지만, 그 어느 지역보다도 서울을 대표하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현재를 압축해놓은 공간이자 현상이 되었다.
저자는 본적은 경북 상주이지만 서울 강북구 수유리에서 태어난 서울 토박이이다. 수유리와 마포구 서교동을 거쳐 국민학교 2학년이 된 1976년, 강남구 역삼동에 새롭게 지어진 개나리아파트에 입주하면서 강남 주민이 되었다. 군 입대 무렵까지 강남에 살면서 강남 개발 초기인 1970년대와 급격히 팽창해나가던 80년대를 직접 목격하였다.
어린 시절 살던 수유리 옛집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도시 탐사의 재미를 느낀 저자는 강남, 그리고 서울 각 지역으로 범위를 넓혀 지역의 변화 과정을 탐사하고 연구해 숨겨진 이야기들을 발굴하는 도시탐험가가 되었다. 『나의 살던 강남은』은 저자가 학창시절과 청년기를 보낸 1970년대부터 80년대의 강남 이야기를 소개하는 책이다. 저자가 직접 경험하고 목격한 강남의 이야기와 도시탐험가가 되어 직접 발로 뛰어 발굴해낸 옛 강남의 흔적들은 오늘날 강남의 화려함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하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그 시절의 강남의 모습을 되살린다.
강남의 주인은 누구일까
중심부에서 내던져진 이방인들이 모여들어 형성된 강남의 전통마을들
한강 이남의 농촌 지역이었던 강남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강남’이 되었을까. 그리고 강남이 개발되는 시기에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저자는 강남의 개발 과정과 함께 강남 개발 이전부터 있었던 전통마을들과 그 흔적을 소개한다. 농촌이었던 강남 지역이 개발되기 시작한 건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영향이었다. 1967년경부터 지금의 서초구를 지나는 경부고속도로 구간 주변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0년 발표된 ‘남서울 개발계획’에 따라 서울 강북 주요 기관과 인구가 분산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중반, 개발을 독려한 정부의 관심을 힘입어 강남은 더욱 팽창되었고, 한적한 논밭이었던 논현동과 반포동 일대는 빽빽한 주택가가 되어 갔다. 1972년 제정된 법률에 따라 ‘주택 건설 촉진 지구’나 ‘재개발 촉진 지구’에 지정되면 다양한 특혜가 있었다. 부동산 관련 세금을 면제 혹은 돌려주기까지 했다. 1976년 도입된 ‘아파트지구’ 제도는 강남 3구 일대와 한강 벨트에 많은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는 데 일조했다.
아파트 단지가 늘어나던 1970년대와 80년대, 강남은 서울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라는 성격이 짙었다. 하지만 강남이 개발되기 이전부터 이주민들이 정착해 살던 마을들이 있었다. 헌인마을은 국립 부평나병원에 강제 수용되었던 음성나환자들과 가족들이 1963년부터 내곡동에 정착해 형성된 마을이다. 헌인마을의 이웃동네 신흥마을은 광복과 한국전쟁 후 월남한 사람들이 정착한 마을이고, 샘마을은 창덕궁과 창경궁 담장 옆에 늘어서 있던 무허가 주택의 철거민들이 집단으로 이주해 형성된 동네이다. 강남은 서울 중심부로부터 내던져진 이방인들이 어쩔 수 없이 정착해야 했던 땅이었다. 내몰린 자들의 터전이었던 강남이 이제는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의 자본과 인력이 집중되는 장이 되었다. 강남의 전통마을에는 이제 더 이상 나환자도, 월남민도, 철거민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저자는 강남의 전통마을에 희미하게 남겨진 흔적들을 기록하며 강남에도 이런 공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하고자 한다.
그래서 샘마을에 던져진 철거민들은 정부로부터 불하받은 땅의 권리를 외지인에게 팔아버리고 떠나지 않았을까, 이런 짐작을 해본다. 오늘날 샘마을 일대를 돌아보면 여느 교외의 고급 주택가처럼 보인다. 한때 철거민이 와서 살았던 동네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런 샘마을은 물론이고 인근의 신흥마을과 헌인마을은 중심부로부터 내던져진 이방인들이 어쩔 수 없이 정착해야 했던 강남땅의 역사를 목격해 온 증인인 거 같다. 그나마도 그러했던 과거와 흔적이 희석되고 있지만. p.156-157 「내몰린 자들의 터전이었던 강남」 중에서
세상에, 강남에 이런 일이
토막민과 소도둑, 그리고 어쩌면 최초의 고독사
살아있는 유기체 강남은 오늘도 변화하고 있다
저자가 들려주는 1970년대~80년대의 강남 이야기는 낯설면서도 흥미롭다. 1976년 12월 역삼동의 개나리아파트로 이사하던 날, 저자는 아파트 주변의 황량한 공터를 지나다 구덩이를 가마니로 덮은 움막과 그곳에서 나오던 아이를 발견한다. 강렬한 인상으로 남은 그날의 기억은 도시 탐사를 위해 자료를 찾던 중 일제강점기에 생겨난 도시 빈민인 토막민과 토막집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되살아났다. 움막 가족은 강남 개발에 떠밀려 또 어디로 거처를 옮겼을까. 또한 1983년 강남구 역삼동의 한 아파트에서 사망한 지 열흘 만에 발견된 60대 남성의 죽음을 떠올리며 어쩌면 최초로 한국 언론에 알려진 고독사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이제는 우리 사회의 너무 만연해져버린 고독사, 그 쓸쓸한 죽음이 시작된 곳도 역시 강남이었다.
서울의 중심부와 멀리 떨어진 외딴 지역이었던 강남에서는 소를 훔쳐 밀도살하는 사건도 자주 발생했다. 1970~80년대 강남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상급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직업 전선에 뛰어든 청소년들이 많았다. 이들을 위한 야학도 역삼동 지역에 있었다고 전한다. 강남 요지의 지주들이 ‘공한지세(空閑地稅)’를 피하기 위해 지었던 대형 식당들, 테헤란로 일대를 가득 메웠던 모텔들, 1985년 이후 생겨난 동아극장, 씨네하우스, 브로드웨이극장 등 개봉관들 등 그 시절 강남을 추억할 수 있는 저자의 경험들을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자본과 성장제일주의 대한민국 사회를 압축해놓은 하나의 현상이 된 ‘강남’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아파트와 빌딩숲 사이 구석구석에는 기록되어야 할 옛 모습이 아직 남아 있다. 저자가 50대에 도시탐험가가 되어 유년시절을 보낸 마음의 고향 강남을 다시 탐사하며 찾아낸 또 다른 강남의 얼굴을 『나의 살던 강남은』에서 만나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