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는 아이는 어떻게 읽지 못하는 어른이 되는가?
EBS 〈당신의 문해력〉 〈책맹인류〉 PD가 직접 쓴 문해력 교양서
7년여 간의 취재와 현장 프로젝트, 수백 편의 논문과 자료,
생생한 경험담을 토대로 정리해낸 문해력 격차의 현실과 대안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에서 기초 문해력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제니 라일리는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1학년(만 5세) 아이들의 문해력이 얼마나 차이 나는지 조사해보았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한 반의 같은 나이의 아이들에게서 5년 정도의 문해력 격차가 나타난 것이다. 문제는 특별한 개입이 없는 한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연구에 따르면, 초등학교 입학 무렵 읽기 능력이 뒤처진 아이가 1학년 말까지 뒤처질 확률은 88%에 달하며, 3~4학년 이전 읽기 학습에 실패한 아이는 평생 읽는 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읽기가 어려운 아이는 점점 읽지 않게 되고, 결국 읽지 못하는 어른으로 자란다.
문해력이 강조되면서 문해력을 길러준다는 학원과 교재가 넘쳐나지만, 읽고 쓰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은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왜 누구는 잘 읽고 누구는 읽지 못할까? 문해력에 대한 오해, 읽기를 방해하는 사회적 요인이 문해력 격차를 부추기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김지원, 민정홍 두 PD는 EBS 〈당신의 문해력〉 〈책맹인류〉 〈문해력 유치원〉 등 ‘문해력 시리즈’ 프로그램을 기획, 연출하며 우리 사회에 문해력이라는 화두를 제시한 바 있다. 특히 학교 현장에서 생각보다 심각한 문해력 저하와 문해력 격차의 현실을 목도하게 되었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문해력 저하는 개인의 의지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일까? 잘못된 정보나 선입견이 우리를 읽기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나아가 우리 사회가 문해력 격차를 방관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책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7년간의 노력을 담았다. 유아부터 성인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대를 취재하고 국내외 주요 연구와 실험, 교육 정책 등을 망라해 정리한 현실 분석과 대안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언어심리학자 마크 세이덴버그의 말처럼 “읽지 않는 현상, 읽지 못하는 현상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문제”라는 관점에서 접근해, 문해력 격차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진단하고 해결책을 찾고자 한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왜 누구는 잘 읽고 누구는 그렇지 못할까?
무엇이 우리의 읽기 능력을 빼앗아가는 것일까?
우리가 간과한 문해력 하락과 문해력 격차의 진짜 원인
한번 떨어진 문해력은 쉽게 회복되지 않고 격차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왜 그럴까? 저자들은 읽기와 문해력에 대한 우리의 오해가 문해력 격차를 벌어지게 만든다고 말한다.
가장 큰 오해는 누구나 때가 되면 자연히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인간은 읽기 능력을 지니고 태어나는 게 아니며, 뇌의 거의 모든 영역이 협업해야 얻을 수 있는 매우 고난도의 능력이다. 또한 각자가 처한 문해 환경이 다르기에 문해력의 크기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은 한글 덕분에 문맹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이고, 그러다 보니 유독 글자를 읽는 행위를 ‘당연히’ 할 수 있는 행위라고 믿어왔다. 그런 까닭에 부모들은 아이가 한글을 빨리 떼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 뿐, 제대로 읽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의 교육과정은 학교에 입학할 무렵의 아이들이 모두 동일한 출발선에 있다고 암묵적으로 전제한다. 우리 사회에 문해력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이유다.
더 어려운 문제는 우리 사회에 퍼진 ‘읽기를 방해하는 요인’들이 문해력 격차를 더욱 벌어지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빨리, 많이 읽기를 재촉하는 문화는 그 대표적인 예다.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갖춘 직장인이 성공한다는 인식으로 빨리 읽기, 속독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학생들은 시험 시간에 지문을 빠르게 읽어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압박을 받았다. 하지만 빠르게 읽는 방식은 우리 뇌가 추구하는 읽기의 메커니즘에 맞지 않는다.
질문을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 역시 문해력 격차를 강화하는 요인이다. 찾고자 하는 지식은 무엇이든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니 힘들게 책을 보며 외우고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여기다 AI 시대에는 ‘질문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마치 배경지식을 강조하는 건 구시대의 유물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하지만 실제 학교 현장에서 실험을 진행한 결과, 배경지식 없는 활동형 수업은 오히려 학생들의 성취도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저자들은 우리가 ‘읽기’와 ‘문해력’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정보나 선입견, 사회적 분위기가 어떻게 문해력 격차를 만들어왔는지를 여러 연구와 현장 프로젝트 결과를 통해 보여준다. 학자들의 연구를 직접 현장에서 구현하고 신뢰성을 획득했다는 점에서 더욱 믿고 볼 수 있는 책이다.
현장 프로젝트와 연구에 기반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
문해력에 대한 불안과 고민을 해소할 믿음직한 안내서
우리는 왜 문해력을 갖춰야 할까? 흔히 문해력이 좋아야 성적을 잘 받고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문해력이 정말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자존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문해력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거나 타인과 소통하고자 할 때, 무언가를 배우고 세상을 알고자 할 때 반드시 필요한 ‘생존의 필수 능력’이다. 문해력이 무너지면 더 이상 타인과 소통하기 어려워지고, 타인을 이해하고 협력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 책에서 문해력 격차가 개인의 문제일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이며, 우리 사회가 적극적으로 문해력 격차를 해소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책의 2부에서는 문해력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6가지 키워드를 제시한다. 아이들에게 독서 교육을 할 때 부모나 교사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동기와 보상의 문제부터 OECD 최저 수준으로 한국인이 가장 취약한 읽기 영역인 디지털 문해력까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문해력의 가장 시급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들이 담겨 있다.
한번 벌어진 문해력 격차는 줄이기 어렵다. 개인적·사회적 관점에서 복합적으로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방법을 알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놓치고 있던 문해력의 본질을 제대로 알고, 개인과 사회가 문해력에 대한 불안과 고민에서 해방되어 격차를 해소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