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이 무엇을 향해 가는 일인지 조금씩 더 선명해졌으면 좋겠다”
비혼, 여성, 프리랜서, 집사, 채식지향주의자, 그림책 읽는 어른…
세계의 가장자리를 살아가는 마음가짐에 관하여
그는 '스스로를 완성해 나가는 개인'으로서 나중에는 틀림없이 멋진 할머니가 될 것 같다. 종종 오해받지만 무척 현명하여, '진실도 작게 말하는' 할머니가. 나는 이 글들을 사랑한다.
-김하나 작가,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저자
그림책을 한아름 안은 무루 작가는 우리에게 자신이 겪은 고통과 슬픔과 상처와 후회와 기쁨과 행복을 보여주고, 모험과 성장은 살아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진귀한 경험이라고 말한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저자
모두가 정상으로 여기는 삶에서 비껴 나 현실보다는 이상을 사는 듯한 조금 이상한 사람. 비혼 여성으로, 프리랜서로, 고양이의 집사로, 채식지향주의자로, 그림책 읽는 어른으로 살아가는 저자 무루가 자신의 삶과 그림책을 엮어 첫 에세이를 내놓았다. 그림책은 비교적 단순한 그림과 짧은 글이 만들어내는 작은 목소리로 삶 안팎에 크고 깊은 파장을 일으키곤 한다.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읽기'의 안내자이기도 한 그는 한 권의 그림책을 읽는 일을 “한 번도 열어보지 못한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에 빗댄다. 그때마다 우리의 “세계가 한 칸씩 넓어진다”고 말이다. 이 책은 세계의 언저리를 사는 존재가 '이상하고 자유로운' 자신의 본성대로 살기 위해,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나은' 삶을 완성해 나가기 위해, 그림책을 읽고 부단히 세계를 확장해온 어른의 성장 기록이기도 하다. 그의 지도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우리의 세계도 한 칸, 어쩌면 여러 칸쯤 더 넓어진 것만 같다.
“혼자지만 더 넓은 지도를 가지고 살아가고 싶다”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읽기' 안내자 무루의 첫 에세이
블로그와 SNS를 통해 생활과 사색의 기록을 단정히 쌓아오며 '무루'라는 이름을 알린 박서영 작가는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읽기'를 이끌어오며 몇 권의 그림책을 번역하기도 했다. 지난 몇 년 그의 테이블에서는 상기된 얼굴로 둘러앉은 어른들이 함께 그림책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림을 그리거나 문장을 썼다. 그리고 하나같이 이야기한다. '혼자 읽을 때보다 무루의 시선을 통과해 볼 때 더 아름답다'고. 이 책은 작가 무루가 “오래 품고 있던 생각들을 천 삼고 아끼는 그림책들을 실 삼아” 쓴 첫 에세이다. 그의 신간 사전서평단 소식에 300명 가까운 이들이 신청하며 이렇게 적었다. '선명하고 정확하게 한 발 한 발 원하는 방향으로 걸어 나가는 사람의 삶을 더 알고 닮고 싶고, 그의 시선과 생각이 궁금하다.'
-태어나는 마음과 삽질하는 마음
선명한 길을 따라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듯 보이는 이가 정작 스스로는 지금도 '자라는 중'이라고 말한다. 몇 번이고 '태어나는 마음'을 반복하며 여전히 “자신을 둘러싼 울타리를 수없이 넘나들며 어떤 것은 허물거나 새로 짓기도 하면서 지도를 만들어” 나가는 중이라고 말이다. 그런 그가 그려온 지도는 어떤 모양일까. 음악, 사진, 차, 식물, 온갖 다채로운 '구덩이'를 파면서 '삽질의 역사'를 써온 무루가 가장 공들여 그린 지도의 한 부분은 책과 글로 채워져 있다. 20대에는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쳤고, 30대에는 청소년들과 인문서를 읽고 글을 썼으며, 40대인 지금은 어른들을 대상으로 그림책과 문장 수업을 한다. 가르친 이들의 성장을 지켜보고 독려하며 자신도 그들과 함께 자라난 듯, 스스로 '늦된'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그의 글에는 '성장'과 '모험'이라는 키워드가 곳곳에 박혀 있다. 이 책은 어른의 삶에 끼어드는 갖가지 '변수' 속에서 수많은 '선택의 가능성'들을 발견해 나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태어나기로 결심한 아이들이다. 성장은 언제나 균열과 틈, 변수와 모험들 사이에서 생겨난다. 그 속에서 수많은 '선택의 가능성'들을 발견하며 조금씩 자신을 완성해 나가게 될 것이다.”(1부 1장 <태어나기로 결심했다>)
-혼자 서는 마음과 세상 끝에 가닿으려는 마음
자유로운 삶을 지향하는 저자가 비혼을 결심할 무렵 그가 아는 어른 중에 비혼자가 없었다. 그 전과 후에도 그가 선택한 많은 일들에 모델이 될 만한 실제 인물이 주변에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이야기가 필요했다. 꼭 두 사람이 삶을 함께 꾸려가야 하는 걸까 고민하던 시기에 그는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과 《떨어진 한쪽, 큰 동그라미를 만나》를 여러 번 읽으며 “어떤 삶은 빈틈에서 완성”됨을, “누군가에게 함께란 각자의 속도로 나란히 굴러가는 일”임을 깨닫는다. 쓸데없는 일을 한다며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동안에는 햇빛과 이야기를 모으고 있다는 프레드릭을 비난하지 않고 “잠잠히 자신들의 할 일을 하는 들쥐들의 너른 마음”을 떠올린다(《프레드릭》). 어딘가 조금씩 이상한 사람들이 어디에도 속할 필요 없이 저마다의 본성대로 살기 바라는 그는 《쫌 이상한 사람들》 속 인물들의 이상하고도 사랑스러운 구석을 찾으며 그들을 바라보는 작가 미겔 탕코의 애정 가득한 눈을 상상한다. 오해받아도 좋다고 말하는 저자는 그럼에도 서로를 이상理想스레 바라봐줄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 이상한 활동들(자급자족의 일상기술 나누기, 마을에 라벤더길 만들기 등)을 전개하기도 한다. 그는 이처럼 혼자서 씩씩하게 걷고자 삶 안팎으로 분투하며 동시에 타인이라는 세계의 끝에 닿기를 바라고 애쓴다.
“나는 스스로 고독하게 살기를 선택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세상과 연결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세상 속에서 내가 무엇이 되고 어떤 것을 해낼 수 있는지도 알고 싶다… 혼자지만 더 넓은 지도를 가지고 살아가고 싶은 이 마음은 '지금도 좋지만 더 좋아지고 싶다'는 것이 아니다. 훨씬 더 절박한 마음이다.”(2부 1장 <실은 한 발짝도 나가고 싶지 않지만>)
-현실에 저항하고 판타지를 사랑하는 마음
그가 연결되고자 하는, 혹은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대상은 타인만이 아니다. 고양이와 식물과 벌레와 심지어 보이지 않는 것(작은 신 '쿠나' 같은 존재)들에까지 가닿는다. 그는 《사슴아 내 형제야》를 읽으며 옛 사냥꾼과 우리 시대의 채식주의자가 연결될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한다. 사냥꾼은 사슴을 입고 걸치며 '나는 사슴이다'라고 생각하고, 채식주의자는 '더 이상 육식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는 이 사이에서 식생활의 윤리를 세우고 지켜나간다. 하지만 작고 연약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으며 돌보는 마음은 그것을 잊은 세계에서 자꾸만 상처 받는다. '살처분되는 돼지들', '평생 임신한 채 고통 속에 사는 개와 고양이들', 세상의 온갖 구멍들에 발밑이 꺼질 때마다 저자는 “세상에 구멍이 있다고 큰소리로 말하는 이야기”를 읽는다. 그런 이야기를 만드는 이들이 존재하고 그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그를 지치지 않게 하고 “세상은 어쩌면 더 아름다워질지도 모른다는 거창한 판타지”를 꿈꾸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판타지란 “무엇도 확신하지 않고, 어떤 것도 단정하지 않으며, 어느 방향으로든 열릴 수 있는 마음의 다른 이름”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짓고 읽고 전하는 마음 또한 이런 것일 테다. “언젠가는 그 좁고 높은 벽에 문이 나기를” 기다리는 마음, 그 문으로 우리가 잊거나 잃어버린 많은 것들이 “사뿐히 걸어 들어”가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내가 아닌 방식으로 나를 살아보는” 마음.
“그 마음 안에는 '그런 건 없어'라거나 '사는 게 다 그런 거야'라는 시시한 말들을 밀어낼 힘이 있다. 무엇보다 즐거움이 있다.”(4부 3장 <내 고양이는 나 없는 동안>)
-할머니가 되기를 설레며 기다리는 마음
“나는 독거노인이 될 것이다”라고 선언하는 비혼 여성으로, 프리랜서라고 하지만 실은 기존의 어떤 단어로 규정하기 어려운 일을 창안하여 살고 있는 '프레드릭'으로, 어른이라고 선생이라고 섣불리 타인을 가르치려 들지 않고 누구나 자기만의 '우거진 숲과 아름다운 강과 비옥한 들'을 지니고 있음을 아는 겸손한 사람으로, 고양이와 식물과 함께 살아가며 인간 아닌 타자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존재로, 완벽한 채식에 실패한 후에도 마음의 방향이 '비건적' 삶에 확실히 가 있는 채식지향주의자로, 세 조카들이 보기에 자주 엉뚱한 일을 하고 낯선 것을 보여주는 이모로, 현실에 저항하고 판타지를 사랑하며 세상의 언저리에서 재미나게 살아가는 이상異常주의자로, 그는 “혼자서, 두 발로, 씩씩하게” 그러나 “몸을 낮게 숙이고 귀를 기울이고 세심히 주위를 관찰”하며 걷는다. 그 길 끝에 신기하고 궁금한 할머니가 있기를 바라면서. 저자는 스스로 아직 자라는 중이라지만, 이미 얼마쯤 자신이 바라는 모습이 되어 있는 듯하다. 그의 작고 단단한 발자국은 우리에게 또렷한 흔적을 남긴다. 희망의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그가 꼽은 그림책들 속 카진스키, 로잰느, 미스 럼피우스, 엠마, '우리동네' 할머니처럼 말이다.
“나는 내가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나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사는 것이 무엇을 향해 가는 일인지 조금씩 더 선명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일 것이다. 홀로 아름답게 삶의 주체로 살아가는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매료되는 것은… 작고 귀엽고 아름답고 신기한 것들이 오밀조밀 공간을 채우고 사랑으로 가득한 마음이 그곳에 깃들기를. 궁금한 것을 묻고 답하며 서로의 마음에 어떤 흔적이 되기를. 슬프지만 아름다운 일들에 대해 함께 소리 내어 말할 수 있는 여정이 있기를 나는 기대하고 있다.”(5부 5장 <나는 조금 설레며 기다린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가 써내려간 문장 사이사이마다, 한발 앞서 길을 내는 사람의 뒷모습과 그가 남긴 흔적을 본다. 기꺼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자처하며 '자신의 삶을 완성해 나가는' 사람의 걸음걸이가 얼마나 이상하고 자유로운지, 얼마나 멀리 내달렸는지 말이다. 그뿐일까. 일러스트레이터 서수연 작가의 몽환적이면서 야성미 넘치는 그림들은 저자 무루의 글과 공명하여, 우리가 모르는 세계의 문을 하나씩 열어젖히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책을 덮고 난 후에는 세계가 몇 칸쯤 넓어져 있을 것이다. 그 세계를 함께 걸어본 이는 안다. 그가 그린 지도가 얼마나 재미난지, 그 지도에 함께한 이야기들은 또 얼마나 매력적인지. 몇 번이고 펼쳐보게 될지 모른다.
“나는 이 글들을 사랑한다”
국내 최고의 에세이스트 김영민 교수와 김하나 작가가 추천하는 책
'할머니가 된다'라는 제목의 글 한 편이 김하나 작가의 트위터와 김영민 교수의 페이스북에서 공유되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회자된 바 있다. 저자가 자신의 블로그에 게재했던 글로 이 책의 마지막 장인 '나는 설레며 기다린다'의 초고이기도 했다. 그 원고를 “근래 읽은 가장 좋은 글”이라고 추천했던 김하나 작가는 이 책 전체를 읽고는 이렇게 썼다. “그는 틀림없이 멋진 할머니가 될 것 같다. 나는 이 글들을 사랑한다.”
또한 추천사를 좀처럼 쓰지 않는 김영민 교수도 이 책을 단숨에 읽고서 '모험과 성장'이라는 화두를 뽑아내며 매사를 부정하는 이들에게 이 메시지와 함께 권하고 싶다고 썼다. “살아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진귀한 경험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