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냅킨 위의 낙서는 어떻게 작품으로 진화했을까”
〈뉴욕〉의 전설을 쓴 편집장 애덤 모스가
현대예술의 별들에게서 발견한 가장 날 것의 예술
쇠락한 공업 도시를 연간 100만 명 이상이 찾는 예술의 명소로 뒤바꾼 건축물이 있다. 바로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이다. 설립과 동시에 ‘빌바오 효과’라는 용어를 낳으며, 뉴욕 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 센터, 런던 테이트 모던과 어깨를 나란히 한 이 비범한 미술관은 어느 건축가의 휘갈긴 스케치에서 시작되었다. 40여 년간 〈뉴욕〉, 〈뉴욕 타임스 매거진〉 등을 이끌다가 전업 화가가 된 애덤 모스는 이를 접하고 호기심에 휩싸인다. 낙서 같은 그림이 기념비적 걸작이 되기까지 도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건축가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작품을 빚어냈을까?
《예술이라는 일》은 그렇게 탄생한 책이다. 저명한 저널리스트이자 화가인 애덤 모스는 현대예술가 48명을 밀착 취재하면서 착상부터 작품에 이르는 창작의 전 과정을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저자가 주목한 것은 버려진 초안, 즉흥 스케치, 낡은 밀착인화지, 한밤중의 메모, 흥얼거리는 소리뿐인 녹음 파일 같은 창작의 거친 흔적들이었다. 저자는 정제되지 않은 수백 개의 표본들을 총동원하여 예술가들이 저마다 어떤 생각의 경로를 거쳤는지, 어떻게 작품을 진전시켰는지 생생하게 복원해낸다.
이 책은 예술가가 자신의 작업과 작품을 자기만의 언어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현대소설의 대문호 조지 손더스가 《바로도의 링컨》을 설계한 방식, 힙스터들의 우상 모지스 섬니가 대표곡 〈둠드〉를 구상하게 된 계기, 개념미술의 거장 바버라 크루거가 지금의 시그니처를 확립해나간 과정 등, 지금껏 공개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만나기 어려울 예술 창작의 원석 같은 이야기가 이 책에 한가득 담겨 있다.
“위대한 예술을 위한 위대한 바이블”  ̄대니얼 핑크(미래학자, 《드라이브》 저자)
48명의 아티스트, 43개의 스토리, 370여 컷의 이미지
기념비적 걸작으로 빛나는 지상 최고의 현대예술 아카이브
《예술이라는 일》의 백미는 예술가들의 환상적인 라인업에 있다. 루이즈 글릭(노벨문학상), 마이클 커닝햄(퓰리처상), 조지 손더스(맨부커상) 등 세계적 명성을 지닌 문인들은 물론이다. 미국 브로드웨이의 대부 스티븐 손드하임, 스필버그 감독의 오른팔로 불리는 토니 쿠슈너,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소피아 코폴라 같은 공연예술계를 휘어잡은 인물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도널드 트럼프의 얼굴에 ‘패배자(loser)’라고 써넣은 바버라 크루거, 밀리언셀러 《소금, 지방, 산, 열》로 요리책의 판도를 바꾼 사민 노스랏, 안개로 지은 ‘블러 빌딩’으로 100만 명을 운집시킨 엘리자베스 딜러 등 각자의 영역에서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예술계의 혁명가들도 등장한다. 그 밖에도 21세기의 랄프 로렌으로 불리는 마크 제이콥스, BTS RM을 사로잡은 싱어송라이터 모지스 섬니, 드라마 〈부통령을 부탁해〉의 지휘관 데이비드 맨들처럼 대중에게 친근한 이름들도 만날 수 있다.
현대예술을 수놓은 주역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일 수 있던 것은, 〈뉴욕〉, 〈뉴욕 타임스 매거진〉 등을 이끌어온 ‘전설의 편집장’ 애덤 모스이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저자는 2년 남짓 인터뷰를 이어가며 오직 예술가 당사자만이 들려줄 수 있는 영감의 순간, 의심과 고뇌의 시간, 창작을 위한 루틴과 기법 등을 채집했고, 이를 희귀 도판 370여 컷과 함께 이 한 권의 책에 담아냈다. 문학, 미술, 음악, 영화, 사진, 건축, 무용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아티스트 48인의 목소리와 대표작을 한눈에 아우르는 이 책은 거대한 창작의 박물관이자 동시대 예술적 성취를 종합한 아카이브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오직 해나가는 일이 있을 뿐이다”
영감을 벼려내고 내 안의 돌파구를 발견하는
가장 고독하고 정직한 노동에 관하여
“글쓰기가 힘든 건, 정말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 루이즈 글릭의 말이다. 실제로 그녀는 꿈속에서 만난 두 개의 시구와 2년 동안 사투를 벌이고 나서야 시 〈야생 붓꽃〉을 완성할 수 있었다. 소설가 마이클 커닝햄은 퓰리처상 수상작 《디 아워스》가 처음에는 ‘댈러웨이 씨’로 불리는 50대 게이 이야기였다고 고백한다. 지금과 같은 ‘댈러웨이 부인’ 중심의 여성 서사로 거듭나기까지 그는 소설의 거의 모든 것을 뜯어고쳤다. 뉴욕을 대표하는 추상화가 에이미 실먼은 유화 〈미스 글리슨〉을 그리면서 덧칠하고 지우기를 39번이나 반복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그림을 그린다는 건 눈을 가린 채로 코끼리를 잘라내는 일과 같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여정이지만 계속해나갈 수밖에요. 빌어먹을, 그게 전부라고요!” 성별과 나이, 출신 배경, 활동 영역이 제각기 다른 48명의 예술가들이 자신의 ‘일’에서 강조한 건 결국 하나였다. 예술 창작에 지름길은 없다는 것.
《예술이라는 일》은 이제껏 신비의 장막에 가려져 있던 창작의 세계를 구체적인 언어와 물증으로 가시화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영감은 무의식의 바다에 내리치는 벼락과 같다. 창작이란 곧 영감의 편린들을 조합하고 가다듬고 형상화하면서 자기만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이 책의 예술가들은 자아가 두 개라도 되는 듯이 자기 자신과의 대화에 끊임없이 몰두한다. 비주얼 아티스트 카라 워커가 조형물 작업이 난관에 처할 때마다 “너, 어디에 있는 거니?” 하고 읊조리고, 극작가 토니 쿠슈너가 〈엔젤스 인 아메리카〉는 또 다른 내가 놓아둔 “빵 부스러기”를 따라간 결과라고 표현한 것처럼 말이다. 의식과 무의식, 외적 자아와 내적 자아를 자유로이 오가며 영감의 씨앗을 작품이라는 결실로 일궈내는 43가지의 방식이 담긴 이 책은 길 잃은 창작자들을 위한 귀중한 지도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