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경찰관 소진기의 두 번째 에세이
주어진 운명에 맞서며 오늘도 살아내는 이들에게 전하는 위안의 언어
글 쓰는 경찰관 소진기의 두 번째 에세이집이다. 총 5부로 구성된 이번 책은 저자의 일상, 경찰이라는 직업을 통해 바라본 세상의 이면, 가족과 친구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 세월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 세상에서 쉽게 외면당하는 가치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글과 함께 더욱 깊어진 사유와 인생을 관조하는 시선이 돋보이는 47편의 글은 독자에게 따뜻한 울림을 전한다. 『부서지며 간다』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도서로 선정된 첫 번째 에세이집『나도 나에게 타인이다』출간 이후 5년간 써내려간 글들이 차곡차곡 모여 있다.
철학, 문학, 음악으로 일상의 희로애락 사이 다리를 만들다
개인에서 세상으로 뻗어나가는 사유의 여정
1장 「birthday blue」에서 저자는 생일이면 느껴지는 왠지 모를 쓸쓸함, 주말부부로 사는 외로움, 유년의 추억에서 오는 그리움 등 비로소 나이를 먹고서야 진하게 느껴지는 감정들을 짚어낸다. 저자는 헛헛한 감정에 취해 있지 않고, 거미줄을 치듯 철학, 문학, 음악을 일상과 연결해 새로운 감정으로 나아간다. 시대와 국경을 횡단하며 저자가 책 속으로 데려온 고전과 경전의 문장들은 우리가 겪는 일이 이 순간, 단 한 사람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위로를 전한다. 특히 친숙하고 즐거운 트로트에서 삶의 지혜를 이끌어내는 저자 특유의 무겁지 않은 진지함이 매력적이다.
2장 「덜 받은 봉급값」은 25년간 경찰 조직에 몸담은 저자가 써내려간 비망록이다. 저자는 세상의 갈등, 충돌과 맞붙어 있는 경찰이라는 직업을 오랫동안 유지해온 사람으로서, “‘좀 더 바람직한 행위’가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사건과 사고, 갈등의 영역에 최초로 뛰어드는 경찰로서 현장에서의 판단과 그로 인한 결과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는 경찰의 숙명을 담아냈다. 같은 직업을 가진 친구, 선후배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이 가야 할 길과 왔던 길을 부지런히 살피는 모습 또한 드러내고 있다.
삶의 갈피를 잡기 어려운 순간에도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
칼처럼 날카롭고 빛나는 문장들이 만들어내는 따듯한 위로
3장 「새들에게 묻는다」와 4장 「매화가 피었다」에는 저자의 그리움의 대상인 가족과 친구에 대한 글이 수록되었다. 저자는 1986년 경찰대학 입학식, 멀리 관중석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모습에서, 아들에게 용돈을 쥐어주고 돌아서 가던 모습에서 쓸쓸함과 외로움을 느낀다. 스물여덟, 돌아가신 아버지의 뺨을 쓰다듬으며 다음 생에는 훨훨 빛나는 인생이기를 기도했던 아들은 이제 두 자녀의 아버지가 되어 지상에 없는 부모님을 그리워한다.
5장 「정의는 굼벵이의 속도로 온다」에서는 겸손, 연대, 우정, 정의, 용기에 관해 이야기한다. “굼벵이 같은 그 정의라는 것이 늦은 밤 묵직한 심판자로 그대의 방문을 노크할 수 있다”라는 문장처럼 명징하고 압축적인 문장들이 빛난다. 저자는 세상에서 외면 받고 있는 가치들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여전히 그것들이 우리 곁에 수호자처럼 있음을, ‘무도한 세계’라도 ‘정의로 빚은 참된 월계관’이 있음을 전한다.
책의 표지와 본문에 수록된 사진은 조성제 작가의 창녕 우포늪 사진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사진은 꺾이고 휘더라도 묵묵히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