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적 사고’라는 인간 본성의 새로운 과학
세계가 주목한 ‘정치-신경과학’의 선구자가 밝히는
우리의 신념과 행동을 좌우하는 숨겨진 뇌의 메커니즘
★★★세계적 석학 스티븐 핑커, 안토니오 다마지오 추천
★★★〈뉴사이언티스트〉 2025년 가장 주목할 책
★★★〈포브스〉가 선정한 30세 이하 과학분야 30인
우리는 수많은 생각과 가치 판단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때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신념이 전부다. 신념은 우리가 틀린 것에서 옳은 것을, 악에서 선을 구분할 수 있게 만드는 기준이 되어준다. 그것이 종교적 사안이든 정치적 사안이든 아주 작고 사소한 의사결정이든 말이다. 그런데 이 신념이 독단주의, 민족주의, 극단주의로 치달을 때 문제가 시작된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을 이분법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신념을 너무 열성적으로 믿은 나머지 타인에게 폭력을 가하며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일도 불사하기 때문이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자신의 생각을 유연하게 바꾸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무엇이 인간의 사고를 극단으로 몰고 가는 것일까? 주변 환경의 영향일까, 아니면 개인의 타고난 특성일까?
인간의 뇌 속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정치-신경과학의 선구자인 레오르 즈미그로드 박사는 자신의 획기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우리의 신념과 행동을 좌우하는 숨겨진 메커니즘을 밝혀내고자 한다. 저자는 실험심리학, 인지과학, 신경과학의 방법론을 사용하여 정치적 신념이 외부 환경에 의해 형성되는 단순한 사회적 산물이 아니라, 우리의 뇌에 침투하여 신경 구조와 세포의 작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보여준다. 그는 생물학과 환경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통해 극단주의의 영향을 받을 잠재력이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다시 말해 어떤 뇌가 이념적 사고에 특별히 취약하고 또 어떤 뇌가 유연하며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지 그 이유를 조명한다.
사람들은 왜 자신의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을까?
생각을 바꾸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정치적 이념에 집착한다
저자는 2015년, 이슬람 근본주의가 세력을 키워가면서 어린 영국 소녀들이 ISIS에 가담하기 위해 시리아로 향한다는 소식을 듣고 머릿속에 커다란 질문을 한 가지 떠올리게 된다. “왜 다른 소녀들이 아닌 바로 그 소녀들이 그랬을까?” 언론에서는 교육의 부재, 사회적 불안정 등을 지적했지만 충분한 답이 되어주진 못했다. 그는 자신의 연구 분야인 신경과학의 렌즈를 통해 이 문제를 바라보기로 한다. 극단주의에 빠진 소녀들의 뇌는 무엇이 다른 것일까? 즈미그로드 박사는 정치라는 영역을 신경과학과 연결하여 이데올로기적 사고의 기원과 결과를 연구한 최초의 과학자 중 한 사람으로 ‘정치-신경과학(political neuroscience)’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이데올로기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일종의 내러티브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상호 작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매우 엄격한 규범을 담고 있으며, 규범에서 벗어나는 것을 비난한다. 이때 우리는 이데올로기를 ‘소유’함으로써 세상을 하나의 일관된 세계로 이해하려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또한 같은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의 집단에 소속되길 갈망하면서 자신이 가진 신념을 강화해간다. 이렇게 우리 뇌는 이데올로기에 빠져들수록 ‘사고의 경직성’에 갇히게 된다.
저자는 간단한 실험을 통해 이념적 성향이 강한 사람일수록 흔히 새로운 정보의 수용과 사고 전환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실험에서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카드를 그 모양이나 색깔과 같은 다양한 규칙에 따라 분류하도록 요청한다. 참가자들은 금방 규칙을 찾아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규칙이 더 이상 효과가 없다는 것을 파악한다. 연구진이 참가자 모르게 규칙을 변경했기 때문이다. 이때, 이데올로기적 사고에 취약한 사람들은 변화를 인정하지 못하고 예전 규칙을 고수한다. 하지만 이데올로기적 사고에 저항하여 자유롭게 생각하는 경향의 사람들은, 규칙이 바뀌었다는 증거가 있으면 행동을 바꾼다. 이 실험이 놀라운 점은 참가자들의 반응이 단순히 인지적 경직성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 이념에 집착하는 경직성까지 반영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단순한 규칙의 변화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정치적 종교적 극단주의에 빠져 있는 확률이 높았으며, 역으로 정치적 종교적 극단주의에 물든 사람일수록 인지적으로 경직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극단주의는 타고나는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
우리 뇌와 정치적 신념의 관계를 밝혀낼 도발적 탐구
이 책의 1부 〈우상〉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이데올로기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어온 은유를 설명하고, 정치와 신경과학을 통합하여 이데올로기적으로 사고하는 뇌를 탐구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다. 2부 〈마음과 신화〉에서는 이데올로기의 탄생과 역사를 살펴보고 이데올로기에 대한 잘못된 신화들을 반박한다. 또한 이데올로기 연구에 관한 본질은 흔히 말하는 ‘진보 vs. 보수’ 프레임을 벗어나서 ‘어떤 정치 이데올로기를 믿느냐’보다도 ‘이데올로기가 어째서 인간에게 그렇게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가’로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3부 〈기원〉에서는 모든 개인이 이데올로기에 똑같이 취약한 것이 아니라면 그 기원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탐구한다. 이는 마치 닭과 달걀의 문제와도 같은데, 개인의 성격과 인지적 특성이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미칠는 것일까? 아니면 경직된 이데올로기에 몰입하는 것이 우리 뇌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저자는 개인의 습관부터 인지적 경직성, 도파민 유전자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을 이념적 도그마에 특히 취약하게 만드는 인지적, 생물학적 특성들을 설명한다. 대표적으로, 심리학자 엘제 프렌켈-브룬즈비크가 1940년대에 수백 명의 어린이들을 인터뷰한 연구를 소개하며 아직 정치적 신념을 형성하지 않은 아이들의 경우 인지적 경직성과 이념적 경직성이 어떤 상관관계를 가졌는지, 편견이 심한 아이들일수록 자신의 신념을 강화하기 위해 기억을 어떤 식으로 왜곡하는지 살펴본다.
한편 저자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 가장 경직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의 뇌에서 도파민 농도가 조절되는 방식이 다른 이들과 유전적으로 다른 요인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밝혀냈다. 경직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전두엽 피질에서 도파민 수치가 낮고, 중뇌의 주요 구조물인 선조체에서 도파민 수치가 높은 경향이 있다. 이데올로기에 취약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뇌의 보상 회로망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우리가 이념을 바꾼다는 것이 단순히 의견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수준에서부터 벌어지는 변화라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그 결과 이데올로기적 사고에 취약성을 가진 이들의 뇌와 신체가 어떤 변화를 겪는지 질문하며 ‘기원’에서 ‘결과’에 대한 질문으로 주의를 돌린다.
어떻게 이데올로기라는 족쇄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최신 신경과학이 전하는 유연한 태도가 중요한 까닭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를 과연 하나의 공통된 세계라고 볼 수 있을까?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는 마치 사람들이 제각각 완전히 다른 현실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이는 말뿐인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경직된 이데올로기에 몰입하는 것은 개인의 감각 지각, 감정, 생리적 반응, 뇌 구조와 기능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을 바꿔버리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념에 깊이 몰입한 사람의 경우, 중도 성향의 사람보다 정보 처리 방식에서 현실을 왜곡하여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저자는 “좌파 성향의 중도파”가 인지적으로 가장 유연하다는 실험결과를 전한다.
4부 〈결과〉에서는 우리를 둘러싼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우리의 몸과 뇌를 형성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데올로기가 실제로 우리의 시각적 경험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시각적 착시와 정치적 착시의 연관성), 감정 처리를 담당하는 뇌 영역이 정치적 성향에 따라 얼마나 극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보수주의와 부정성 편향 가설) 등을 살펴보며 현대 과학기술을 통해 이데올로기가 인간의 두뇌 구조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할 수 있는지 확인시켜준다. 마지막으로 5부 〈자유〉에서는 우리의 유전적, 환경적 영향이 경직된 사고를 유발할 수 있지만, 이러한 사실들이 유전적 결정론이나 자유의지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짚는다. 결국 우리는 어떤 이념을 얼마나 열정적으로 수용하거나 거부할지 스스로 선택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팬데믹의 대유행, 극우 포퓰리즘 세력의 장악, 전쟁과 자연재해 등 사람들은 물리적 안전에 위협을 느낄수록 극단주의에 더 쉽게 물들게 된다. 공포와 두려움이란 감정은 우리 뇌를 자신이 가진 신념을 더욱 강화시키는 쪽으로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신경과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확대하여 바라볼수록,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인간 본성에 맞서 비합리적 규칙과 권위에 저항하는 우리의 능력을 키워나갈 수 있으리라 말한다. 양극화와 극단주의가 갈수록 심화되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반드시 읽어야 할 이 책은 신경과학의 최전선에서 밝혀진 놀라운 통찰들을 전하며 우리를 악성 도그마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세계로 안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