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 서평
작곡가가 남겨놓은 이야기를 찾아보겠다는 것에서 시작된
‘득수 읽다 시리즈’의 두 번째 책, 『베토벤을 읽다』
첫 책 『쇼팽을 읽다』에서처럼 동일하게 8명(4명의 소설가와 4명의 시인)의 작가를 섭외하고 작가들에게 베토벤 소나타 4곡을 시와 소설의 언어로 재해석한다는 기획 의도를 전했다.
그리고 원고를 기다렸다.
독자들도 이 책에 흥미를 느꼈을 때, 혹은 막 읽기 전 의문을 가질 것이다. 대체 베토벤 소나타를 듣고 작가들은 어떤 이야기를 도출해냈을까, 라고.
편집부에서도 작가들에게 원고를 받기 전까지 어떤 글이 올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이 바로 이 시리즈가 가진 아름다운 당혹스러움 아닐까 싶다.
[소설]
베토벤 소나타 8번 〈비창〉을 맡은 하명희 소설가는 1986년 해고된 ‘해고자’를 위해 46일 동안 노숙 단식을 하는 선배와 ‘해고 없는 세상’을 등짝에 붙이고 암 투병중인 몸으로 37일 동안 400킬로미터를 선배를 향해 걸어오는 ‘해고자’, 이 둘을 기다리는 주인공 ‘나’를 통해 인간의 존엄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가, 선배와 함께 인간의 존엄을 지켜냈다고 생각했어요. 만난다는 건 이겼다는 말이라는 걸, 선배와 그가 몸으로 보여주었다고. - 하명희, 「아다지오 칸타빌레」중
〈월광〉을 맡은 소설가 김도일은 태풍으로 갑자기 불어난 물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갇힌 남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늑대 인간」에서 2022년 9월 포항에서 발생한 태풍 힌남노로 처참해진 개인과 가족의 모습을 직설적으로 전하며 아무렇지 않게 잊고 살아가는 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떠났다. 관리소 직원이 집요한 검찰의 조사를 견디지 못하고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그는 태풍이 왔을 때 근무일이 아니었지만 제일 먼저 출근을 한 사람이었다. 아들을 잃고 혼자 구조되었던, 뉴스에서 B씨라고 나왔던 여자는 베란다 빨래 건조대에 목을 맸다. - 김도일, 「늑대 인간」중
〈폭풍〉을 맡은 백가흠 소설가는 기회주의자 김영태를 통해 끝내 진심어린 사과가 아닌 유서를 쓰는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면서
김영태의 신화는 그를 두려워하는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었다. 그는 그런 사람들을 이용할 줄 알았다. 그에게 진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 그의 인생 전부가 거짓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가 평생 벌였던 사회운동은 그에게는 그저 직업적인 것의 한 부분이었다. - 백가흠,「복숭아를 씹으며」중
시의성 짙은 인물과 상황 속에서 현실을 꼬집고 있다. 마지막으로 〈열정〉을 맡은 이수경 소설가는 오래전 완성하지 못한 이야기를 최근에 다시 쓰게 되면서 주인공 ‘나’가 계속해서 글쓰기를 실패할 수밖에 없는 지난 시간의 기억들을 소환해낸다.
실패는 언제나 이 순간에 왔다. 기억은 믿을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기억이 불확실한 문장을 만들고, 급기야 지독한 불신과 거부감에 압도되는. – 이수경, 「유월의 일」
1980년 6월과 1942년부터 1982년 그리고 1988년 4월에 이르기까지 누군가의 재의 혹은 모두의 재의에 대한 이야기인 「유월의 일」까지 음악의 언어로 소설을 풀었다.
[시]
최정호의 해설에서 알 수 있듯이, 'Pathetique'를 베토벤이 의도한 대로 번역하자면 ‘비창’보다는 ‘비장미’에 가깝다. 권상진은 「내색」에서 “끝내 꽃은 웃고 있지만, 나는/먼 곳의 일들을 이제 믿지 않기로 한다”며 〈비창〉의 장엄한 슬픔을 표현했고 이병일의 「베토벤 비창으로 듣는 빗소리 환상통」은 “죽는 고비로 놀란흙을 깨우듯/죽을 고비로 한뼘씩 뒤틀리며 자라지요”에서 그 느낌을 살려냈다.
「달빛 아래, 우나 판타지아」에서 서숙희는 고유의 감성으로 분절된 세상을 욕망으로 연결하면서 〈월광〉의 아름다운 선율을 떠올리게 했고, 이병일은 「베토벤 월광소나타-못」에서 “산 채로 죽을 사람이 죽은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며 영월 청령포에서 또 다른 월광을 보여주었다.
“그만두겠다는 편지를 쓰다가/다시 시작하게/되었습니다”라는 구절로 끝맺은 김은지의 「주어 생략」과 “희미를 쫓아 떠난 이들은 지금쯤/어딘가에서 희망을 만났을까”라는 구절로 끝맺은 권상진의 「구석」은 난청에 시달린 베토벤이 죽음을 유예하며 작곡한 〈폭풍〉 속 우울하면서도 우아하고 서정적인 음악이 담겨 있는 듯 하다.
〈열정〉이 사회적 신분의 제약으로 사랑을 이루지 못한 베토벤의 복잡한 심경을 격렬하고 비극적인 연주로 풀어냈다면, 「보드게임 새로 시작할 때」의 김은지는 “누구도 나에게 그렇게까지 관심 없다/나를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도/그렇게까지 관심 없다”, “그것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그렇게 관심 없다/누구도 나에게 그렇게까지 관심 없다”며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을 복잡하게 드러냈고, 「열정, 아름다운 사람을 위한 소나타」에서 서숙희는 “격정은 피었다가 져버리는 혁명 같은 것/접어둔 악보를 펴자/한 움큼의 사랑이”라며 음악의 언어를 시로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