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감영에서 설치한 낙육재는 인재양성과 문풍 진흥을 위해 설립한 경상도의 영학營學으로 1721년(경종 원년)에 경상감사 조태억趙泰億( 1675-1728)이 설립하였다. 도내 재주 있고 뜻이 돈독한 선비를 선발하여 학업을 권장하고 문풍을 진흥하고자 대구부의 남문 밖에 설치하였으며, 그 명칭은 『맹자孟子』에서 말한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시키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에서 취한 것이다. 낙육재는 감영의 공적 교육기관이었으므로 영학營學 또는 영재營齋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지난해에는 「경상감영의 인재 선발과 낙육재 동연록」이라는 논제로 경상감영에서 선발한 낙육재 재생들의 동연록[동문록]을 총 정리하여 발표하였다. 동연록에 수록된 명단은 대개 이곳에서 공부한 사람들의 개인 문집과 관련 문헌에서 발굴한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은 Ⅰ장 서문에 이어서 Ⅱ장에서는 경상감영 영학의 수용과 설립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먼저 반계 유형원의 교육개혁 방안 가운데 영학의 성격을 살펴보고 교육 제도를 수용한 배경을 구명하였다. 그리고 낙육재의 설립과 관련하여 조태억의 「낙육재 절목서」, 조현명이 정한 「낙육재 권학절목」과 「낙육재 절목」 등에서 교육적 기반을 살펴보고 장서 구성을 도출하였다. 낙육재 운영과 관련하여 학전의 규모, 운영비, 학습과 관련하여 권장 도서를 짚어보고 강독과 제술의 실상을 살펴보았다.
Ⅲ장에는 후대 경상감사의 낙육재에 대한 관심과 교육 의례를 살펴보았다. 여기서 낙육재에 관심을 보인 경상감사 몇 사람의 행적을 추적하여 흥학적 관점에서 낙육재의 흥망을 구명하고 감사가 행한 교육 의례 행사인 정읍례, 향음례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Ⅳ장은 필자가 1978년부터 낙육재 동연생同硏生의 명단을 수집하고 정리한 내용을 중심으로 전개하였다. 동연생이란 동창생을 의미하며, 전체의 명단이 동연록同硏錄[동문록]이다. 이것을 중심으로 먼저 선발된 자의 거재 횟수별 현황을 살펴보았다. 여기에 수차례 지원하여 거재한 사실이 있다면 당시 선비들이 낙육재에 대한 자긍심과 교육기관으로서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연령별 현황을 살펴보았다.
낙육재가 교육기관으로서의 어떤 성격을 지녔는가를 최초 선발·거재 당시의 연령을 통하여 파악하기 위함이다. 또, 지역별 현황을 살펴서 학풍이 어느 정도 확산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구명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재생들의 문집 현황과 낙육재 관련 글은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본 후, 행적이 두드러진 사람들과 한말의 애국 계몽의식을 보인 재생들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언급하였다.
Ⅴ장에서는 낙육재 교육이 대구 교육 문화에 끼친 영향을 다루었다. 주로 낙육재 철폐 이후 지역의 교육과 문화 계승에 대한 내용이다.
끝으로 부록에 낙육재 동연록, 낙육재 도서목록, 낙육재 『재록』의 원문 영인본을 수록하여 연구에 참고가 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