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거리에 살았던 유대인 철학자와 흑인 작가
한 편의 글, 한 통의 편지에서 시작된 충돌과 대화
1954년, 워싱턴의 연방대법원은 공립학교의 인종 차별은 헌법을 위반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1957년 아칸소주의 리틀록에 사는 아홉 명의 흑인 학생에게 지역 공립 고등학교의 입학이 허가되었다. 이후 흑인 아이들의 등교는 수많은 백인의 반대에 부딪혀야 했으며 백인과 흑인 사이에 소요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리고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1959년 발표한 에세이 「리틀록 사건을 돌아보며」에서 백인들의 반대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를 무대로 삼은 흑인들의 운동을 비판했다. 아렌트에게 흑인 차별은 정치를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였으며 학교에서의 인종 차별 철폐는 정치적 과제가 아닌 사회적 과제였다. 그는 흑인 대표 단체가 일반적인 인권, 시민권, 보통선거권이 아니라 노동, 주택 시장, 교육과 같은 사회적 차별에 집중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뿐만 아니라 자녀의 성장을 설계할 권리는 부모에게 있고 아이들은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리틀록의 아이들을 어른의 싸움에 끌어들인 점에 우려를 표했다.
당시 흑인 소설가 랠프 월도 엘리슨은 이러한 아렌트의 입장에 분노했다. 그리고 로버트 펜 워렌의 책 『누가 검둥이를 대변하는가』에 실린 인터뷰에서 “초점이 너무 빗나갔”(167쪽)다는 말로 아렌트를 비판한다. 이 인터뷰를 읽은 아렌트는 1965년 엘리슨에게 사과의 편지를 쓰기에 이른다. 『뉴욕 거리의 한나 아렌트와 랠프 엘리슨』은 아렌트가 쓴 한 편의 에세이, 그리고 한 통의 편지에서 출발하고 있다.
어쨌든 저는 제 잘못을 인정합니다. 무자비한 폭행, 신체의 본능적인 불안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기분이 들어요. 너무나도 정확한 당신의 소견 덕분에 제가 상황의 복잡다단함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깨달았어요.(한나 아렌트가 랠프 엘리슨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15쪽)
편지를 썼던 당시 한나 아렌트는 뉴욕 리버사이드 드라이브가 370번지에, 랠프 엘리슨은 730번지에 살았다. 같은 거리에 살았던 유대인 정치 철학자와 흑인 소설가 사이에는 어떤 간극이 있었던 것일까. 유대인으로서 차별을 경험했던 아렌트는 왜 흑인 학생들의 강제적 통합에 반대했으며 어떠한 이유로 추후에 그 생각을 바꾸었을까. 『뉴욕 거리의 한나 아렌트와 랠프 엘리슨』은 똑같이 바다를 건너 미국으로 흘러들어 온 유대인과 아프리카계 흑인 사이에 어떠한 대조적인 조건과 입장이 존재했는지 파고든다. 저자 마리 루이제 크노트는 한나 아렌트와 랠프 엘리슨이 남긴 저작과 기록물, 편지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번영과 발전으로 가득했던 20세기 중반 미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그려내었다.
▶ 미국 사회의 ‘보이지 않는 인간’ 흑인,
아렌트가 간과한 반유대주의와 흑인 박해의 출발선
랠프 엘리슨의 대표작인 장편소설 『보이지 않는 인간』은 흑인을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바라보는 백인의 폭력을 고발한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흑인 대학생은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음에도 자신이 여전히 ‘보이지 않는’ 존재임을 깨닫고 방황하다 어두컴컴한 지하실로 숨어든다. 미국 사회의 소외를 나타내는 지하실, 지하 은신처는 주인공에게 적대적인 외부 세계로부터의 보호 공간이자 수치심과 분노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공간이기도 했다. 자신의 내면에서조차 안전하지 못했던 당시 흑인의 상황이 묵직하게 전달된다.
그러나 이러한 억압은 흑인에게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닌 현실이었다. 흑인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무런 이유 없이 두들겨 맞고, 살해되었다. 백인의 폭행으로 흑인이 날마다 죽었지만 범인 대부분이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흑인은 행운이나 우연에 기대어서만 생존할 수 있음을 의식하면서 살아야 했다. 이러한 사회에서 1954년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흑인에게 큰 환호를 불러일으킬 만한 사건이었다. 흑인 아이들에게 드디어 “기적 같은 가능성의 세계가 열”린 것이다. 아렌트의 주장은 흑인들을 격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엘리슨에게도 흑인의 고통은 매일매일 벌어지는 현실이었다. 아렌트는 흑인의 이러한 상황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유사함은 있겠지만 유럽의 유대인에게 흑인의 것과 같은 기나긴 노예의 역사는 없었다. 아렌트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유대인이었지만 그러한 이유로 대학입학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 아렌트의 문제의식과 엘리슨의 경험은 어디에서 만나는가
저자는 아렌트가 비록 흑인의 상황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지만 흑인과 백인의 불평등을 옹호한 것은 결코 아니라고 말한다. 아렌트는 「리틀록 사건을 돌아보며」에서 투표권, 시민권, 원하는 사람과 결혼할 권리와 같은 정치적이고 개인적인 기본권을 법으로 제정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억압받는 자들의 편에 섰고 정치에서 노예제도의 유산을 청산하기 위해 애썼다. 인종 차별에 대한 아렌트의 주장과 흑인으로서 엘리슨의 경험과 의식은 곧게 뻗은 거리처럼 평행선을 달리지 않는다. 그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헌법적으로 공존하는 “해방의 시간”이 오기를 원하였고, 엘리슨 또한 그의 작품에서 마침내 모든 장벽이 무너지는 “순간”이 오기를 염원했다.
아렌트는 흑인 박해에 대한 직접적인 저작을 많이 남기지는 않았지만 아렌트의 편지와 그의 행보를 통해 독자들은 아렌트의 정치적 목표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노예제도의 유산에 대한 책임 있는 처리 방식을 모색했고, 흑인에게 능동적인 정치 참여를 보장할 권리를 부여하는 평등 수정헌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저자는 오랜 시간 쌓아온 한나 아렌트의 연구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아렌트의 과오와 성찰을 재검토한다. 20세기 중반 벌어졌던 두 인물 간의 첨예한 논쟁은 오늘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인종 차별에 대한 보다 깊은 시각을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