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침몰까지 했냐고? 뭐, 굳이 따져보자면 순전히 우연 때문이라고 봐야겠지. 이런 비유밖에 못 해 미안하지만, 누군가 토카레프로 당신을 쐈다고 상상해 보시오. 팔이나 다리에 총알이 박혔다면 아마 99퍼센트 살 수 있을 거요. 물론 병원이 가깝다는 전제하에. 그런데 머리에 맞았다면 응급실이고 나발이고 그 자리에서 즉사하지 않겠소? 기계도 마찬가지지. 사람에게 급소가 있듯이 기계에도 약점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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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나도록 함대에서 사고를 숨겼다는 걸 아세요? 그러기 위해 우리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척, 폭발로 인한 침몰이 아니라 사소한 기술적 해프닝이 발생한 척을 차례로 해야 했어요. 그다음에는 최선을 다해 구조하는 흉내를 냈고요. 웃기는 일이죠. 폭탄 구덩이 위를 누더기 양탄자로 대충 덮으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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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뭐라도 된다고 생각하면 그건 정말 큰 실수예요. 나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에요. 사고에 휘말린 억울한 피해자일 뿐이지. 지금이야 많은 게 드러났으니 당신 눈에는 내 행동이 아니꼽겠죠. 방금 이야기처럼 잘못된 정보로 내린 판단도 있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과연 내 실수가 절대적일까요? 사고를 일으킨 것도, 승무원들이 산 채로 죽어간 것도 전부 내 책임으로 모는 건 너무하지 않아요? 눈치를 보다 보고서를 조작하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한 다른 군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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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 말고는 다 좋아 보여. 윗놈들은 당당하게 뉴스에서 인터뷰를 하고, 상을 받은 다음 승진도 해. 정작 허무하게 피흘린 아이들을 위해서는 기념비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기지. 아무것도 변한 게 없어. 우리는 매년 기일이 되면 어선을 빌려 타고 잠수함이 침몰한 바다로 나가. 꽃다발을 던질 때마다 내 아들을 그냥 죽도록 놔둔 거, 그리고 그 죽음을 가지고 무엇 하나 바꿔놓지 못한 채 헛되이 흘려보낸 거…… 그게 제일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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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껏 울어요. 원하는 만큼, 오래도록. 사람을 원망하거나 상황을, 세상을 탓해도 돼요. 아니, 되는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그래야만 해요. 스스로 모든 걸 담아두려는 건 억지니까요. 우리는 손이 찢어진 것보다 가슴에 멍이 드는 걸 더 아프게 느끼는 사람이지 저 위에서 한결같은 표정으로 득실을 따지는 냉혈한이 아니잖아요. 울음을 참는 건 다른 날, 다른 세상에서 해도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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