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말, 이야기, 정치적 사유는
돌봄과 접근성, 혁명적인 꿈, 오늘날의 회복탄력성에 관해
당신이 알고 있던 것을 뒤흔들어놓을 것이다.
마주할 준비를 단단히 하길.” ―일라이 클레어
부서진 채로도 잘 살 수 있는
불구 미래에 대하여
아프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돌봄망이 무수히 교차하는 곳
그곳에서 우리는 서로를 버리지 않을 방법을 알아낼 수 있다
퀴어 장애인 펨 작가, 조직활동가, 공연예술가, 교육자이며 북미 전역의 대학, 콘퍼런스, 공동체 행사에서 강연과 공연을 하는 리아 락슈미 피엡즈나-사마라신하는 노동계급 퀴어 유색인 페미니스트 장애인으로서 북미 장애정의운동을 일궈온 주요 활동가 중 한 사람이다. 회고록 출간 이후 시집이 아닌 단독 저서로는 두 번째인 《가장 느린 정의》는 본격적으로 장애정의를 소개하는 책이다.
장애정의(Disability Justice)는 2005년 패티 번, 미아 밍구스, 스테이시 밀번, 리로이 무어, 일라이 클레어, 서배스천 마거릿이 설립한 장애정의집단(Disability Justice Collective)의 흑인, 브라운, 퀴어, 트랜스 구성원들이 만든 신조어로, 그간 주류 장애인권 단체들이 백인 중심적이고 단일 쟁점에만 초점을 맞추는 상황에서 주변화되었던 장애인 퀴어와 트랜스, 흑인과 브라운을 중심에 놓으며 교차적인 다중 쟁점 정치를 지향하는 운동/관점/인식틀이다. 저자가 리드 퍼포머로 활동하는 신스인발리드는 미국 오클랜드에 본거지를 둔 장애정의 공연 집단으로, 흑인과 브라운 퀴어 장애인의 섹스, 몸, 투쟁에 관한 여러 공연을 제작해왔다.
저자는 이러한 장애정의운동 및 장애정의 공연예술이 본격적인 정치/문화운동으로 태동하고 있을 때 문화노동자로 참여했으며, 자주 침대에 누워 일했다. 섬유근육통과 척추관절염, 만성피로 면역결핍 증후군이라는 만성질환을 가진 동시에 근친 성폭력 피해 생존자이자 신경다양인으로서 평생 복합적인 PTSD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신스인발리드와 함께하면서 장애 예술가들에게 매우 섬세하고 높은 수준의 접근성이 보장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고, 그런 경험이 자신의 삶 한구석에만 머물러 있길 원치 않게 된다. 이미 활동가이자 문화노동자로 다양한 단체들에 몸담아왔으나 단일 쟁점에만 초점을 맞추는 상황에 줄곧 한계를 느끼던 저자는 장애정의와 신스인발리드를 만나며 모든 운동과 작업에, 나아가 해방 공동체의 전망에 교차-장애 연대와 교차-장애 접근성이 필요하고 또 실행할 수 있음을 경험으로 확신하게 된다.
교차성과 장애정의는 더 이상 별세계의 말처럼 들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변화는 비장애인들이 “불구자들을 잘 대해주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장애가 있는 퀴어 및 트랜스 유색인들이 조직화를 시작했기 때문에 일어난 변화”다. 이 책은 이러한 역사의 일부를, 그것이 만들어지고 상상된 그대로를 담아내고자 한 기록이며, 부서진 채로도 잘 살 수 있는 불구 미래로 우리를 안내하는 지도다.
구체적 도구, 해방의 정치, 그리고 시: 이것이 장애정의다
저자는 서문에서 “장애정의가 무엇을 의미하고 무엇을 의미하지 않는지”를 분명히 짚는다.
“나에게 장애정의란 장애가 백인 중심적으로, 남성 중심적으로, 혹은 이성애 중심적으로 정의되지 않는 정치운동을, 그리고 그런 관점을 공유하는 서로 맞물린 많은 공동체들을 뜻한다. (……)
나아가 장애정의는 비장애중심주의가 인종차별주의, 기독교우월주의, 성차별주의, 퀴어혐오와 트랜스혐오를 가능하게 만들며, 이 모든 억압 체계가 단단히 맞물려 있다고 단언한다.” (36~37쪽)
저자의 말처럼, 장애정의운동은 기존에 주변화되어왔던 이들(아프고 장애가 있는 퀴어-트랜스-흑인-선주민-유색인)을 중심에 놓는 교차적 운동이다. 이들이 뒤에 남겨지지 않는 것을 넘어 이들이 앞장서고, 이들이 리더가 되는 운동이다. 또한 장애정의는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퀴어혐오 등이 궁극적으로 비장애중심주의로부터 가능하며, 따라서 이 모든 억압 체계가 “단단히 맞물려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장애정의운동을 비롯한 모든 장애정의 관련 작업은 단지 ‘장애인들의 권리 증진’을 도모하는 문제가 아니라 비장애중심주의를 깨부수는 해방의 전망을 확고히 하는 일이 되며, 여기에는 (당연히) 비장애중심주의를 비롯해 자본주의,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계급주의, 이성애중심주의, 식민주의 등 온갖 억압 체계와 여성혐오, 퀴어혐오, 트랜스혐오, 창녀혐오 등에 맞물린 사람들의 운동을 가로지르는 공동 전선의 정치, 즉 교차-운동 연대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 운동에서 사람들은 “그 누구도 뒤에 남겨놓지 않고 함께 움직인다”.(38쪽)
한편, 공연예술가이자 다수의 시집을 출간하기도 한 저자는 장애정의 문화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로 “아름다운 동시에 실천적이라는 점”을 꼽는다. 시와 춤이 접근성과 관련된 정보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말하는 저자는 자신의 책을 그 한 가지 사례로서 우리에게 내보인다. 이 책의 문장들은 그 논의의 깊이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춤처럼 역동적이고, 시처럼 아름다우며, 현실의 비루함을 숨기지 않을 정도로 솔직하다. 장애 정치가 그 자체로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이자 문화인 것처럼, 이 책 또한 매우 구체적인 도구들과 개인적인 에세이들의 혼합물이 되었다. 그에게 장애정의 만들기는 사유와 말하기와 지식의 영역에 있는 만큼이나 모두가 접근 가능한 이동식 화장실을 빌려놓는 법, 모두가 아프고 지치고 미쳐 있을 때 온갖 갈등과 모순을 마주하면서도 어떻게 서로를 돌볼지를 배우는 법 안에도 있다. 바로 이 실천적 면모의 중요성을 저자는 강조한다.
다른 자리에서 돌봄을 사유하기: 장애정의와 돌봄노동
이 책의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사회 전반의 제도와 정책은 물론 페미니즘과 좌파 담론들에서마저 자주 인식/인정의 사각지대에 놓이고 돌봄의 대상으로만 호명되는 아프고 장애가 있는 저소득층/빈곤층 퀴어 유색인들의 자리에서, 이들을 주체로 돌봄 구조와 담론을 재편한다는” 것이다.(옮긴이 해제, 463~464쪽) 이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각종 장애정의 실천들은 공통적으로 “공동체를 살리는 돌봄노동”(옮긴이 해제, 496쪽)이다. 흔히 장애인들은 돌봄의 ‘대상’으로만 여겨지지만 실제 현실에서 장애인들 사이 돌봄 실천은 활발하다. 이들은 서로 약과 정보를 나누고, 이동이 가능해 마트에 갈 수 있는 사람이 식재료를 사다주고, 미등록 장애인을 활동보조인으로 말하고 이동수단을 공유하며, 얇은 지갑을 털어서라도 당장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한 또 다른 장애인에게 돈을 보낸다. 아프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주체가 되는 돌봄은 이미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저자는 이를 돌봄인 동시에 생존을 위한 투쟁이자 저항으로 서술한다. 창조적 실천으로서의 돌봄을 “‘진정한’ 운동”이자 노동으로 의미화한다.
저자는 자신의 삶과 목격한 삶들에 대한 증언으로 아프고 장애가 있는 퀴어-트랜스-흑인-선주민-유색인들을 돌봄 실천의 주체로 조명하도록 이끄는데, 그 방식은 이들이 서로에게 돌봄을 창출해온 방법들에 관한 매우 구체적인 실례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노동계급 유색인 장애인 퀴어 펨으로서 자신과 같은 아프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구해왔고 지금도 구하고 있는 그 모든 방법들을 “혁명적 노동”의 힘이라 말하는 저자는 이를 장애정의 작업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돌봄노동의 힘을 (마치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일처럼) 결코 낭만화하지 않는다. 실제 아프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구축했던 돌봄망들은 성공과 실패를 오가고 여러 갈등과 복잡한 난제들에 맞닥뜨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돌봄노동의 불평등한 구조는 여성들에게, 퀴어 공동체 안에서도 여성적으로 젠더화된 사람들에게, 인종적으로는 유색인들에게 떠맡겨져왔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갈등과, 장애인 또는 퀴어라는 같은 공동체 안에서도 유독 한쪽으로만 내맡겨지는 돌봄/감정노동의 불평등한 구조를 거침없이 까발리며 그 모든 걸 직면한 채로 함께 가고자 한다.
이로 인해 가능해지는 것은 ‘기본값’의 재설정이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일방적으로 ‘해주는’ 것이 아닌 상호돌봄의 모색, ‘건강한’ 비장애 몸과 정신이 아닌 늘상 지치고 미치고 아픈 상태를 전제하는 돌봄의 모색, 여성적으로 젠더화된 사람들에게 당연하다는 듯 떠맡겨지는 게 아닌 양해를 구하고, 때로 거절할 수도 있고, 응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공정한 감정노동 경제의 모색. 노동계급/가난한 장애인 유색인 펨들은 바로 그러한 돌봄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실천해온 이들이며, “아프고 미치고 부서진 채로도 잘 살 수 있는 불구 미래”(옮긴이 해제, 468쪽)의 전망은 장애정의와 이들의 돌봄망이 교차하는 곳에서 그려진다.
새로운 세상이 출현하게 하려면
“우리의 일이 존나 불구화될 필요가 있다”
장애정의와 돌봄이 만드는 세계가 ‘아직’ 도래하지 않은 오늘 이곳에서 여전히 억압적인 체계와 그로 인한 폭력을 맞닥뜨리며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살인적인 상황으로 내몰리는 소수자들은 말 그대로 생존자다. 이들 중 많은 이가 운동에 뛰어들지만 비장애중심주의, 인종차별주의, 여성혐오, 트랜스혐오 등의 억압 체계는 운동사회/공동체 안에도 존재한다. 이 책의 또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은, 운동권 내부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이다. 활동가인 저자의 경험은 다음과 같은 서술들에 짙게 배어 있다.
“우리의 운동은 너무도 번아웃을 유발하는 속도로 진행되어 슬픔, 분노, 트라우마, 영성(spirituality), 장애, 노화, 양육, 아픔이 들어설 여지가 거의 없고, 그래서 많은 사람이 나이 들거나 아이를 가졌거나 아프게 되거나 더 아파지거나 더 장애가 심해지거나, 혹은 더 이상 일주일에 12번씩 열리는 회의에 참석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운동판을 떠나게 된다.”(184쪽)
“나는 수많은 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자기들이 반대하는 것들의 목록에 ‘비장애중심주의’를 흔쾌히 덧붙이는 것을, 또는 자기네 성명서의 ‘정의’ 목록에 ‘장애정의’란 단어를 함부로 내뱉어놓는 것을 보아왔다. 하지만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의 조직화 활동은 아직도 이전과 정확히 똑같이 접근 불가능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10마일 거리의 행진을 하고, 워크숍에서는 사람들에게 ‘의자에서 일어나 움직여요!’라고 재촉하고, 그 어떤 장애 관련 안건이나 조직화 전략도 포함하지 않는다.”(228쪽)
“하지만 나는, 다른 많은 펨과 여성적인 사람들과 더불어, 여전히 여성혐오로 피해를 입고 있다—끝도 없는 공짜 돌봄노동과 감정노동은 그야말로 우리 공동체와 이 세상이 우리에게 맡긴 역할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세상의 궁둥이를 닦아주게 되어 있는 것이다. 1990년대, 이제 막 신체장애인이 된 유색인 노동계급 펨으로서 나는 내가 속해 있던 퀴어 공동체와 급진적 교도소정의 공동체들이 나의 젠더를 얼마나 얕잡아 보는지—특히 내가 장애인이고 파산하고 학대 생존자로서 지원이 필요했을 때—자주 느꼈다. 그때 나는 정말로 형편없었다—나는 그저 또 다른 궁핍하고 나약한 계집애일 뿐이었지, 그치? 그런 공동체들 안에서 펨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유일한 자리는 우리가 터프하고, 취약하지 않고, 항상 ‘전원이 켜져 있고’, 절대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상태로 있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혼자가 아니란 걸 알고, 이런 경험이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안다.”(254쪽)
운동판 안에서도 또다시 계속해서 주변화되고 공동체 돌봄/감정노동에 헌신하다 나가떨어지며 공동체 리더로서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면서도 과도한 책임감에 시달리는 펨들의 트라우마와 자살에 관해 저자는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저자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일종의 유색인 퀴어 유토피아로 내세워지는 너무도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 만안 지역에서마저 “공동체, 상호원조, 돌봄에 대해서는 온통 말뿐인 곳이라는 사실에 대가리가 터질 것 같”았고 그것이 “자살사고를 불러일으키는 요인 중 하나였”(361쪽)다는 서술은 교차성 문제에 무관심하거나 나아가 이것에 적대적인 운동이 어떻게 기존 사회의 억압과 폭력에 중첩되는지를 드러낸다.
불구 미래가 전망이 아닌 현재가 될 때
리아 락슈미 피엡즈나-사마라신하는 서문에서 “수많은 불안을 품고 이 책을 썼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동료들, 조직활동가들, 또 다른 장애정의 공연예술가들, 그리고 자신이 직면한 것보다 더욱 노골적이고 살인적인 비장애중심주의에 맞닥뜨렸던 사람들 모두를 지워버린 채 자신이 장애정의의 ‘얼굴’이 되고 이 책이 장애정의에 대한 ‘대표작’이 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언제나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 중인, 아프고 장애가 있는 수많은 퀴어-트랜스/흑인-선주민-유색인으로 이루어진 바다” 안에서 한 명의 작가이자 공연예술가로 존재하는 그의 책은 서문에 쓰였듯 장애정의에 관한 수많은 “책들의 정원에 놓인 한 권의 책”이고, 이 정원은 역시나 그의 말처럼 더 풍성해져야 한다. 《가장 느린 정의》는 그러한 정원으로의 훌륭한 안내자가 되어줄 것이며, 이 책을 통해 장애정의의 세계를 “온전히 조망”하고자 하는 이들이 늘어날 때 불구 미래는 비로소 전망이 아닌 현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