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의 영원한 친구, 찰스 디킨스
부지런한 발걸음, 다정한 손길, 따스한 인간애와 연민으로
가난하고 순박한 이들을 보듬어 안아준 보석 같은 산문들
★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찰스 디킨스의 산문과 연설문 다수 수록!
“그는 가난하고 고통받고 박해받는 이들의 동정자(sympathiser)였으며, 그의 죽음으로 세상은 영국의 가장 위대한 작가를 잃었다.” 《올리버 트위스트》, 《크리스마스 캐럴》, 《데이비드 코퍼필드》, 《어려운 시절》, 《두 도시 이야기》, 《위대한 유산》 등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들을 쓴 찰스 디킨스의 묘비에 새겨져 있는 문장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작품 속에 사실적으로 담아낸 디킨스는 현실에서도 그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평생 노력했다. 그가 ‘빈자의 영원한 친구’, ‘어린이들의 후원자’, ‘크리스마스를 발명한 작가’, ‘셰익스피어의 영혼의 아들’ 등으로 불리며 작가로서뿐 아니라 좋은 친구이자 인정 많은 이웃으로서도 큰 사랑을 받았던 이유이다.
찰스 디킨스 산문선 《단지 순박한 사람들》은 소설가이기 이전에 뛰어난 산문가이자 비평가이기도 했던 찰스 디킨스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산문과 연설문 15편을 엄선해 수록한 책이다. 이 책에 수록된 산문 다수는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것이며, 영문학 박사이자 전문 번역가 정소영이 “디킨스의 특성이 잘 드러나고 현재의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만한 글을” 직접 엮고 옮겼다는 점에서 한국의 독자들에게 더욱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이 책에는 각 산문집의 초판본 표지들, 디킨스의 글이 출판될 때 함께 수록되었던 동시대 유명 삽화가들의 일러스트를 그대로 수록함으로써 당대의 분위기와 글의 정서를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왜 지금 디킨스를 읽어야 하는가?
인간다운 삶과 변하지 않는 가치들
이 책은 찰스 디킨스가 신문과 잡지에 연재한 비소설 산문, 지배층의 탁상공론과 부조리를 신랄하게 비판한 정치 비평문, 미국과 이탈리아를 다녀와서 쓴 여행기, 소설가로서 명성을 얻은 후 여러 모임에 초청받아 쓴 연설문 등 다양한 형식과 주제의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글이 쓰인 시기나 그 형식의 차이는 있지만,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이 거리 저 거리를 부지런히 살피며 돌아다니는 디킨스의 모습, 지배층의 탐욕과 이기심에 대한 비판적 시선, 가난하고 순박한 이들에 대한 연민의 정서가 곳곳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디킨스는 빈민가의 허름한 술집에서, 악다구니로 가득한 전당포에서 가난하지만 순수하고 인정 넘치는 사람들을 만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꿋꿋이 자기 생활을 꾸려가는 서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버려진 공장 창고를 사비로 구입해 병원으로 개조하고 아픈 어린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사람들에게서는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지 우리 스스로 묻게 하고, 하루에 열두 시간씩 일을 하면서도 짬짬이 글을 써서 창작 문집까지 발간하는 여성 노동자들에게서는 일하는 사람 따로 글을 쓰는 사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자명한 사실을 마주하게 한다.
이런 글들이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이유는 디킨스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개척한 극도의 사실주의적 묘사 때문이기도 하다. 옮긴이가 말하듯이 “당대 사회의 재현을 기본 특성으로 삼는 사실주의 소설의 기반을 닦았기에 시대의 산물이자 스스로 시대를 정의했던 작가로 여겨지는” 디킨스는 19세기 런던의 구석진 골목 풍경, 미국과 이탈리아 여행에서 걸었던 거리들, 그곳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몸짓과 표정을 화가가 붓질을 하듯이 빼어난 묘사로 그려냈다. 이 산문들을 읽다 보면 디킨스를 따라다니며 그 장소와 풍경들을 직접 보고 있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한편, 이 책을 통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번역, 소개되는 디킨스의 정치 비평문과 연설문들은 냉철한 사회 비평가 디킨스, 풍자와 유머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연설가 디킨스의 면모를 동시에 보여준다. 특히 대다수 서민 계층이 사회적 차별과 생활고에 시달리고 지배층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는데도 대중의 생각을 대변하기는커녕 제대로 이해조차 못 하고 있는 정부와 입법부를 맹렬히 비판하는 연설에서는 “거의 두 세기 전 지구 반대쪽 나라의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지금 이곳의 현실과 닮았다”(‘엮은이의 말’ 중)는 느낌마저 준다.
“집요하게 밀고 나가면 의회에서 뜻을 이룰 수야 있겠지만, 과연 국민들 사이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신중히 따져보기 바란다. 한동안은 그런 정치적 양보를 부인할 수 있고 국민도 참을성 있게 견딜 수는 있다. 하지만 모든 이의 안락한 난롯가의 급소를 찌르고 모두의 자유를 함부로 건드린다면 한 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 격한 감정이 들끓기 시작할 테고, 그것을 잠재우려면 국왕이 흔쾌히 왕좌에서 내려오고 귀족도 작위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144쪽)
이 책에 수록된 디킨스의 다채로운 글들은 그의 작품 세계의 커다란 줄기라 할 수 있는 연민과 동정심, 베풂과 숭고한 희생 등의 가치들을 보다 선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남들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자기보다 낮은 곳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각박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독자들에게 그의 글들은 어느샌가 퇴색되어버린 소중한 가치들, 따스한 인간애와 연민의 정서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작가란 무엇인가? 왜 계속 쓰는가?
디킨스가 우리에게 남긴 위대한 유산
디킨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톨스토이는 “디킨스의 소설 속 인물들 모두가 나의 친구들”이라고 말했고, 자신의 서재에 디킨스의 초상화를 걸어놓을 정도였다. 빈센트 반 고흐는 노동자들의 빈곤한 삶을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그린 디킨스의 작품들을 좋아해서 “나는 디킨스가 언어로 표현한 것을 그림으로 그리고 싶다.”라고 썼다.
디킨스는 당대에 이미 ‘유명인(celebrity)’이라 불릴 만큼 작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의 시선은 한결같이 어둡고 누추하고 낮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낭독회를 열어 아픈 어린이를 위한 모금 활동에 나서고, 가난한 여성과 노동자들을 위한 교육 기관의 설립을 돕고 재정적으로도 오랫동안 지원했다. 그에게 있어서 문학은 강한 사람들로부터 약한 사람을 지켜내는 무기이며, 힘겹고 고단한 삶에 잠시나마 휴식과 웃음을 가져다주는 휴식처에 다름 아니었다.
“언뜻 보기에는 실속 없어 보이는 수많은 치장과 장식이 여전히 우리 곁에서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합시다. 아무리 냉혹한 머리도 가장 부드러운 마음과 공존할 수 있습니다. 그 둘의 결합과 공평한 균형은 그것을 소유한 사람에게 있어서 항상 축복이 되고 인류에게 축복이 됩니다.”(300쪽)
디킨스의 발자취가 생생하게 새겨진 이 책 《단지 순박한 사람들》은 작가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왜 글을 계속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한다. 디킨스는 동런던의 한 어린이 병원을 방문했을 때 만난 아이들을 회상하며 이렇게 썼다.
“애처로운 신음 소리가 작은 몸뚱이를 흔들 때조차 그 시선은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마치 자신을 돌보는 작은 병원의 이야기를 친절한 사람들에게 가능한 한 널리 퍼뜨려달라고 간청하는 듯했다. 깍지를 껴서 턱에 얹은, 아무런 표시 없는 작은 손에 세상사에 찌든 내 손을 가만히 갖다 대면서 나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속으로 약속했다.”(81쪽)
디킨스는 자신의 글을 통해 그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그가 작가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한 덕분에 그 아픈 아이의 간청은 두 세기 후의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까지 감동적으로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