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백 시인이 시집 『밥풀』(2015) 이후 9년 만에 『경주마였다』를 펴낸다. 시집과 시집 사이에 놓인 간극이 꽤 오래된 편인데, 이런 시간의 터울은 아마도 갈고닦아야 할 서정의 솜씨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증표일 것이다. 게다가 여기에는 시인의 꼼꼼한 성격이 반영된 측면도 있었을 것으로 이해된다. 이전의 시집 속에 있는 시편들도 그러하지만 이번 시집에서 수록된 시편들 역시 시인의 그러한 성격이 촘촘히 박혀 있는 듯 보인다. 정제된 언어와 깔끔한 정서의 표백이야말로 시인의 그러한 생리적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까닭이다.
『밥풀』에서와 마찬가지로 시인의 서정의 샘은 어머니이다. 시인에게 있어서 서정시를 만들어내는 근원에는 늘 어머니가 자리하고 있다. 이 시집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작품이 어머니를 소재로 한 것이라는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중략)
존재들이 하나의 꽃으로 된다는 것은 하나의 공동체가 된다는 뜻이다. 시인은 지금껏 자신을 감추면서 타자와 하나 되는 길을 모색해왔다. 그러한 모색 속에서 관계의 의미를 밝혀내기도 했다. 그런 다음 이 지점에서 공동체의 이상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이해해왔다. 「꽃밭」은 그러한 시인의 의지가 만들어낸 구경적 이상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공동체라는 하나의 지점에 이르기 위해서는 각각의 개별성이나 고유성은 상실되어야 한다.
시인은 그러한 개성을 꽃으로 대치시키면서 인간이 갖고 있는 개별성이랄까 고유성을 사상시켜버렸다. 꽃이라는 하나의 단일체를 만들어내면서 개별적 특이성을 은폐시킨 것이다. 그 결과 시인이 만들어낸 이상적 모델이랄까 유토피아가 ‘꽃밭’의 세계이다. ‘꽃밭’은 여러 이질적인 요인들을 하나로 만들어내는 통합의 장소라는 점에서, 각각의 개별성이나 고유성이 사라지는 지점에서 만들어진 통일성이라는 점에서 시인이 추구해온 ‘관계’의 정점에 놓이는 공간이다. ‘경주마’처럼 달려온 시인의 끊임없는 서정적 노력이 이 ‘꽃밭’의 발견에 이르렀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번 시집의 구경적 의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송기한(대전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