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당신은 유난히 겨울을 닮았습니다. 가끔은 낯설 만큼 차가운 공기에 코끝이 시려와 목도리를 얼굴에 두르고 겉옷을 두껍게 입어야 할 때가 있지만, 눈 덮인 거리의 풍경이라던가 눈 내리는 날 불 켜진 가로등 아래의 시선처럼, 그저 겨울의 장면 같은 당신에게 한없이 젖어버리는 날이 많았습니다.
십이월 어느 날의 신도림역. 베이지색 코트를 입은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울먹이던 그날을 기억합니다. 옷을 여미며 견뎌왔지만 더 이상 그 추위를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던 그날. 일기예보를 보지 않은 채 거센 한파를 고스란히 맞이했던 날.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아도 이렇게 작별을 맞이할 수 있구나 실감했던 하루. 여전히 나를 하얗게 물들 만큼 예쁜 겨울 속에 당신이었지만, 나는 그 차가움을 견뎌내지 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이제와 그 겨울 속에 남은 것은 당신의 베이지색 코트와 자주색 목도리뿐입니다.
한동안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그 눈들이 다 녹을 때쯤, 아마 많은 것들이 괜찮아지고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 당신은 유난히 겨울을 닮은 사람이었습니다.
- 겨울 -
그것은 동경이었을까요, 아니면 주제넘은 연민이었을까요. 가끔은 지나치는 낯선 이의 색깔이 없는 무감각한 표정을 보며, 그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행복해 보이진 않는 그 사람의 표정을 바라보면서, 내가 겪어본 적 있는 모든 마음을 그도 경험한 적 있을까, 대부분을 겪어보았으니 저렇게 생기 하나 없는 표정으로 또각또각 걸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한 채 그를 스쳐 지나갑니다. 나는 지금 이만큼 힘든데, 당신도 내가 겪고 있는 이만큼의 힘듦을 알고 있을까 궁금해하면서요.
그러면서 나를 스치는 당신이 조금 좋아졌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세상이 무너지지만 사실 누구나 겪는 흔한 아픔이라는 것을 알기에, 한 번쯤 앓아 본 적 있어 보이는 당신을 동경하게 됐고, 그 아픔의 끝은 단단하고 삭막해진 마음의 완성이라는 것 또한 알기에 조금은 당신이 측은해집니다.
당신은 여전히 무감각한 표정으로 나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는 영영 알 수 없겠지만, 당신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고선 조금은 안도했습니다. 부디 행복하세요. 나도 꼭 행복해질 테니.
- 길에서 -
거짓말처럼 새벽이다 모든 사물이 명암을 낮추었는데 그제야 보이는 다채로움이 많네 그때 알았다 푸름이 짙어지면 새벽이 된다는 것을 살갗을 드러낸 옛것들이 어떤 푸르름을 고이 새기고 있다 찬란해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반갑지만은 않은 시공간의 공유 저쯤 어딘가에 나는 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지 원체 무슨 색깔이었는지 까맣게 잊어버렸다 잊은 게 많은 나는 영영 잃어버리기 전에 그 무언가를 기억하려고 여력을 다하고 있다 헤집어진 속을 붙잡고 욱여넣은 옛것들을 반추하면서
- 반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