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9. ‘기다림의 에너지를 모으는 시간’ 중에서
인생을 살면서 발생하는 고통의 상당 부분은 ‘관계’에서 생겨난다.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고, 지금의 상황에 알맞은 말과 행동을 할 수 있으려면, 깃대에 매달린 깃발처럼 바람의 방향과 정도에 맞춰야 한다. 어느 정도 장단(長短)을 맞출 줄 알아야 한다. 삶의 조화(調和)! ‘뭣이 중헌지’를 안다는 것은 그와 같은 삶의 표현이다. 깃대의 깃발처럼, 바람이 멈추었다면, 나대지 말고 깃발이 휘날리기를 기다려야 한다. 때를 기다리며 멈추어 있을 줄 알아야 한다. 바람이 불어온다면, 마땅히 깃발을 휘날려야 한다. 주저 말고 잠시라도 바람의 방향을 타고 다양한 측면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바람결의 속성을 거스르다간, 역풍(逆風)의 쓰라림에 상처를 입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p76. ‘바람을 타고 성장하는 대나무처럼’ 중에서
죽자요장득무필풍취(竹子要長得務必風吹)! 대나무는 성장한다. 반드시 바람이 불어 흔들리며 애쓴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역경(逆境)을 이겨야 성장할 수 있다. 역경(逆境), 불행한 처지나 환경이, 바로 이 역경(易經), 주역의 세계를 꿈꾸는 것은 아닐까? 문왕은 그렇게 했다.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유배지 그 척박한 땅에서, 우물물을 마시며 역경을 연구했다. 『주역』의 가치가 한층 높아지는 이유도 그 가운데 깃들어 있는 듯하다.
아직도 군데군데 눈이 쌓여있는, 정원과도 같은 유리성을 꼼꼼히 돌아봤다. 가는 곳마다 벽에 적혀있는 좋은 문구들이 많았는데, 한 구절을 마음에 새겼다.
‘자강불식, 후덕재물(自强不息, 厚德載物!) 스스로 힘써 쉬지말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자! 인간미 넘치도록 인격[덕]을 두텁게 하여 모든 존재를 포용하자!’ 유리의 찬 바닥, 그 감옥에 앉아 있던 82세의 서백 문왕이 내게 주는 교훈이다.
p124. ‘멈춤의 지혜, 중길종흉’ 중에서
어쩌면 인생이 참 재미있다. 이 소송이 거의 숙명처럼, 〈송(訟)〉괘를 배우는 시간과 겹쳤다. 그러다보니, 〈송(訟)〉괘의 가르침이 더욱 잊히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가슴에 새겨진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는 준비를 충분히 하자! 철저하게 고민한 후에 도모하자! ‘작사모시(作事謀始)!’ 어떤 혼돈 속에 있을지라도 일상을 지키고, 다른 엉뚱한 곳으로 가지 않아야 괜찮으리라. ‘수상불출(守常不出)!’
다시 생각해 보니, 그렇다. 내 인생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흉(凶)’이라고 생각한 일련의 과정이 과연 ‘흉(凶)’만으로 끝났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 가운데 내가 배우고 느낀 것이 너무나 많다! 앞으로의 삶을 그려나가는데 커다란 자양분이 되리라. ‘흉(凶) 가운데 잉태된 길(吉)!’ 그 원리를 볼 수 있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 얼마나 고마워 할 일 아닌가!
p291. ‘인연이 깊어지는 만큼’ 중에서
약간의 호기심은 있었지만, 전문적인 공부를 한다는 것이 벅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세미나에서 『주역』을 공부하는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이상한 오기(傲氣) 같은 것이 생겼다. 그런 오기도 『주역』강좌에 참여하는 한 원인이 되었으리라. 이렇게 해서 나의 『주역』 공부는 시작되었다. 공부란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사이의 믿음과 신뢰가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나름의 소신이다. 물론, 나는 『주역』을 가르치는 신창호 교수님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고, 먼저 『논어』를 공부하면
서 나름의 판단은 섰다. 그러나 무엇이건 처음부터 적극적이지 못한 성격은 공부를 망설이게 했다. 그러나 『주역』특강 참여를 결정하고, 듣기 시작한 『주역』은 나의 그런 불확실성을 멀리하게 만들었다.
공부를 하면서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소설 속에 차마 쓰지 못했던 것들이 생각났다. 소설공부를 시작했던 과정과 그 이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느 하나에도 인연이 닿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것은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사람과의 인연에서 시작된 인생 2막이었다.
p217. ‘엄마의 날개’ 중에서
닭에게 ‘날개의 쓸모’가, 내게는 공부와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높이 날아오를 수 없다 해도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것! 대단한 무언가를 이루지 못한다 해도, 매일 푸드득 날개짓하며 살아온 인생의 날개 짓이 한음이 되어 남는다면, 이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엄마의 인생이 남긴 ‘한음’이, 나에게 공부의 길을 포기하지 않게 해주었듯이, 내공부의 길이“공부하기 위해 잠시 돈을 번다!”라는 둘째 딸의 인생에 ‘한음’이 되어 남기를 희망해본다. 나도 엄마가 되었지만, 이렇게 나이가 들수록, 참 그립다. 내 인생의 한음(翰音)!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