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수술 후, 1년이 지났을 때다. 포항에서 대학 생활을 하고 있던 딸이 전화했다. 여름방학 동안 포항에 내려와 상담받으라고 한다. 나는 강릉에서 아들의 도움을 받으며 지내던 중이었다. 딸은 포항에 있는 상담센터 연락처를 보내주면서 예약하라고 부추겼다. 결혼 후, 상담받고 싶을 때가 간혹 있었다. 남편과 부부 상담도 받고 싶어 상담받아 보자고 말했지만 바로 거절당했다. 1회에 10만 원 정도 하는 상담비가 너무도 부담스러워서 그냥저냥 살아왔다. 지방 대학가에는 방학이 되면 월세방을 비워 놓고 고향으로 가는 학생들이 있다. 딸 친구도 그랬다. 딸은 친구가 지내던 방이라며 방학 1개월 동안 지내게 해주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던 딸은 방학 동안 미국으로 인턴 생활을 하러 갔다. 나는 포항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중략)“딸,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나는 이렇게 솔직한 말로 표현하지 않았었다. 이제는 내 마음을 차분하게 또박또박 말로 표현한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내 마음을 감추고 살아왔다. 내 마음이 무엇인지 알고도 가슴안에 묻혀 놓곤 했었다. “선생님도 너희처럼 소중하단다. 그러니까 선생님에게도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안 돼요.” 학생에게 예전에는 하지 않던 말을 부드럽고도 당당하게 한다. 내 마음도 소중하다고 챙긴다. 남편은 내가 서울에 가면 과자를 먹으라고 한다. 혼자만 먹기에 좀 어색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건강을 잘 챙겨야 해서 과자, 튀김 음식, 밀가루 음식을 안 먹을 거라고 말한다. “난 안 먹을게.” 내가 싫다고 말하는데도 남편은 자꾸 권한다. “괜찮아. 이거 한 번 먹는다고 아무 상관 없어.” 괜찮다고 말하는 남편 말을 이젠 듣지 않는다. 남편에게 괜찮은 일이 나에게는 살기 위한 절박함이기 때문이다. 남편과 내 생각이 다를 때, 예전처럼 남편의 말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 “아니, 나 안 먹을래요.”
- 내 마음 토닥토닥 -
어렸을 때부터 나는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했다. 성장기까지는 부모, 학교 선생님, 동네 어른들, 친구들, 친척들로부터 칭찬을 듣고 싶었다. 나는 그 사람들이 좋아하거나 좋게 볼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했다.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남편, 직장에 있는 사람들, 형제들, 교회 사람들이 그 대상이었다. 특히, 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가장 인정받고 싶은 대상은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이었다. 나는 일에 더욱 집착했다. 내 생활, 건강, 마음을 지키는 일은 소홀히 했다. 이제 나는 그 인정받고자 하는 욕심을 내려놓았다. 연말이나 크리스마스 때, 전 교직원 분께 초콜릿을 선물로 드리던 것, 학급 학생들에게 개인 돈으로 캠핑을 해주던 일, 수업에 필요한 더 좋은 자료를 준비하기 위해,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남아서 일하던 것. 내 건강이 감당하지 못할 일을 하겠다고 나섰던 일들이다.
누구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을 찾았다. 나 자신 내 모습 그대로다. 누구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나는 나임을 알았다. 이제 나는 내 건강과 삶을 먼저 돌본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일만 한다. 주어진 시간과 여건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정성을 다한다. 진실한 마음과 행동으로 사람들을 대한다. 나는 나를 인정하고 칭찬해 준다. 매일 매일 살아가는 모습이 기특해서 토닥이며 위로하고 칭찬한다. 나를 더욱 나 되게 세워 가는 가장 정직한 힘이다.
- 나를 응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