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운명은 우연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얼마나 교묘한 위장인가. 그런가 하면 우연도 운명의 모습을 할 때가 있다. 얼마나 기발한 변장인가. 어쨌든 하나는 운명이고 하나는 우연인 게 분명하지만, 문제는 카멜레온 같은 그 둘을 구별하기가 어렵다는 거다. 까닭에 어떤 이는 우연과 운명을 뭉뚱그려 인연이라 말하기도 한다.” 우연과 운명을 잇는 것이 인연이다. 삶의 시작과 끝엔 무수히 많은 간이역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시절 인연이라 부른다.
소설 〈종이비행기〉는 ‘무지개 정신병원’의 입원 환자로 만난 두 사람, 은설과 연지의 시절 인연을 담고 있다. 그 둘의 이야기가 재현되는 영화에선 설하와 연우로 만난다. 연지/연우는 은설/설하에게 특별한 애착을 갖는다. 연민과 이해, 선망과 애정으로 만나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선의의 손을 내민다. 그 다른 한 사람도 진심과 애정으로 그 손을 맞잡지만, 그 손이 파국을 향한 예고라면, 그 또한 운명일까. 주인공들의 운명적인 만남과 미묘한 갈등, 그리고 그들이 마주하는 선택의 순간들은 독자들을 여운 깊은 여행으로 이끈다.
사실 뒤에 숨은 진실, 진실 뒤에 숨은 사실
둘의 간격은 얼마나 될까
은설은 자신과 연지의 이야기가 재현된 영화를 보고 실제와 허구의 경계를 의심한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지만,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은설에게는 여전히 미궁으로 남는다. 허구와 실제의 간극을 파고들수록 은설에게 현실은 파악 불가한 것이 되고 결국 그 현실 속에서 길을 잃고 만다. 우연과 인연, 운명의 삼각관계가 만든 파국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진실? 그러나 무엇이 진실인가, 진실은 무슨 의미를 갖는가? 소설 〈종이비행기〉가 묻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타의에 의해 강제로 병원에 갇혀 지냈던 작가의
40여 일의 기록
이 작품은 소설과 영화 시나리오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형태의 이야기로, 단순한 픽션 이상의 경험을 선사한다. 작가 자신의 실제 경험담이 이 소설의 단초를 마련했다. 작가는 오래전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할 당시 준비하던 영화가 좌초되면서 극심한 우울과 절망 속에 충동적인 사고를 저지르고, 상황은 블랙코미디로 흘러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하게 된다. “이곳에 있는 환자들은 저마다 사연이 있었다. 그 사연이라는 것을 듣고 보면 어디에선가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들이었고, 누구에게라도 있을 수 있는 일들이었다. 말하자면 방심을 했거나 운이 나빠서 이곳으로 유배된 거나 다름없었다.” 그곳에서 만난 다양한 인물들의 애달픈 사연들을 일기로 남겼고 그 기록이 소설의 밑거름이 된다.
한 편의 소설 속에 담긴 한 편의 시나리오
제1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 〈검은 모래〉와 거친 삶 속에서 정체성을 찾으려는 무국적자, 프랑스 외인부대 한국인 용병의 방황과 고뇌를 그린 소설 〈무국적자〉 그리고 감춰진 성적 욕구, 질투와 이기적인 욕망, 어긋난 배려, 소유욕 등 인간의 본질을 그려낸 소설 〈파란 방〉을 이은 작가의 네 번째 소설 〈종이비행기〉는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소설과 영화로 치환하는 독창적인 구성으로 현실의 진위가 우연과 운명의 난해함 속에 길을 잃고 마는 바로 그 현실을 문제 삼는다. 작품마다 넓은 스펙트럼의 소재와 시공간을 쓰고 다채로운 에피소드와 플롯을 다루는 재능으로 이번에는 소설과 시나리오가 한 편으로 묶여 소설의 재미에 더해 영화 시나리오의 시각적인 묘사와 극적 서술이 신선한 즐거움을 준다. 독자들이 이야기의 장면과 감정을 더욱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는 구소은 작가만의 장점이 녹아든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