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인천대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할 때, 학생들한테 편지를 꽤 받았었는데, 내용은 주로 이랬다. 그렇게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어떻게 우리 이름을 모두 다 외울 수 있냐고. 어떻게 그 이름 중에서 단짝까지 고려해서 모둠 활동을 설계할 수 있냐고, 어떻게 우리에게 권위가 1도 없는 표정으로 다정하게 다가올 수 있냐고 말이다. 그때마다 답장을 쓰지 못해, 그 답장을 여기에 쓰자면, 다음과 같다. 김연수 소설을 읽으면서 오랜 시간 다정해지자고 다짐해왔다고. 다정해야 할 순간이 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정해지자고 다짐해왔었다고.
(「다정함」, 17쪽)
소설에서 남자는 새로운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자신의 찌질함 덕분에 여자에게 먼저 헤어지자고 말했다고 밝히며, 만약 여자에게 들려주기 위해 『사기』까지 읽었다는 이 노인을 그때 알았다면, 과연 우리가 헤어졌을지를 반문한다. 생각해보면, 아내 덕분에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읽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하지만, 그 후 김연수의 모든 책들을 신간으로 구입하고, 꾸준히 읽고 썼던 건 우연이 아니다. 그건 ‘여자친구=아내’와 함께 다져진 길에 만들어진 ‘필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사랑’도 그렇고, 지금 ‘하는 일’도 그렇고, 우리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동시에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함께 걸어온 길이라면, 그건 절대 헛된 시간일 수 없다고, 그러니까 스스로 나쁜 쪽으로만 해석하면서 찌질해지지 말고,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라고 말이다. (「여자친구 : 아내」, 127쪽)
TV나 유튜브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편으로 감정이 동하다가도, 한편으로는 본래 인생이란 그런 것이니, 저분들이 봄의 세계를 만들어낸 것처럼, 지금 조바심의 단계에 있는 ‘우리’도 미래에는 저렇게 봄의 세계를 누리겠구나. 이렇게 인정하게 되었다. 김연수의 말마따나 “기다리는 그 즉시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렇지만, 기다릴 수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지 손에 들어오게 된다. 그러니까 마음 심(心)의 상태를 너무 부정적으로만 해석하지 말고, 일단 기다리자고. 김연수의 소설 제목처럼 다가올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생각해보자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곡선」, 19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