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세계
이하언의 창작집 『무한의 오로라』에 나타난 작가 의식은 타자에 대한 책임감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가족, 혹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국가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타자에 대한 책임감은 모든 것이 박탈된 궁핍한 ‘얼굴’, 고통받는 ‘얼굴’의 모습으로 각인된 타자에 대한 책임감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우리가 수호해야 할 민족, 국가, 조상의 땅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개」에서는 개로, 「무한의 오로라」에서는 헤어진 옛 애인,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는 초점 인물, 「특수임무 수행」부터는 국가, 「풀잎」에서는 작가의 대타자라고 할 수 있는 힘없는 민중, 「광야에 서다」에서는 민족, 「태양을 품은 여인」에서는 조상의 땅이었다.
이하언의 『무한의 오로라』에서 타자의 개념은 주체의 존재를 초월해 타자를 염려의 대상으로 삼는, 모든 대상을 타자로 지칭하기로 한다. 또 우리가 지각하고 있는 현실적인 세계가 아니라 불가시적 세계의 선험적 타자라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쳐 주체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우, 타자로 설정한다. (중략)
“나의 욕망은 타자를 통해서만 활동하고 타자를 통해서만 대상을 포착한다”는 레비나스의 말처럼 타자 없이는 어떤 것도 욕망할 수 없다는 그 타자의 개입은 주체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다. 즉 타자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의식이며 가능 세계의 표현이며, 작가가 가야 할 세계의 무한자가 현시하는 지평이다. 『무한의 오로라』의 작품들에서 보여주는 주체는 이기적인 자신을 떠나서 신에게 받는 사랑을 실천하라는 명령을 실천하는 윤리학, 타자 윤리학의 실천의 장이다.
대부분의 여성 작가들의 작품은 일상 소쇄사(小瑣事)를 중심으로 서사가 이루어진다. 그에 비해 이하언 작가는 일상 소쇄사를 떠난 다양한 소재, 역사물조차 고대사, 현대사를 가리지 않고 서사화하는 노회(老獪)한 작가이다. 타자 윤리학을 실천하는 장으로서의 이하언의 작품들에서 보여주는 주체들은 타자에게 완전히 개방함으로써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 삶의 장을 확대하고 있다.
― 이덕화(소설가,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