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삶에는 각자의 무게가 있다”
인생의 무게를 분산해야 하는 이유
일과 삶의 균형을 ‘워라밸’이라고 한다. 둘 사이의 균형이 필요한 이유는 한쪽으로 치우칠 때 체력과 마음이 금세 소진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삶의 균형을 잘 지키고 있을까? 휴일만을 기다리며 평일 동안 일에 열과 성을 다하는 것이 균형을 잘 지키는 삶일까? 중용이란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은 상태를 늘 유지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평일엔 열심히 일하고 주말엔 열심히 놀아야 한다는 극단적인 태도로는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다. 일하는 시간은 길게만 느껴지고 휴식 시간은 짧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늘 여유 없이 넘치거나 모자란 상태에 놓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삶의 균형은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각자의 삶에는 각자의 무게가 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나는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를 먼저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걱정이 많은 탓에 매사가 급급하고 초조하지는 않았는지, 잘 살고 싶은 마음은 큰데 행동이 따라 주지 않아 우울함을 느끼지는 않았는지, 과도한 책임감 앞에서 무너진 적은 없었는지, 그리고 때때로 찾아오는 무기력함, 예민함, 공허함과 같은 감정에 사로잡혀 하루를 망쳤다는 자책감을 느끼지는 않았는지. 이것은 모두 삶의 균형이 무너진 순간들이다.
하루의 태도가 모여 일주일의 태도가 되고, 일주일의 태도가 모여 인생 전반의 태도를 이룬다. 그러므로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은 반복되는 일주일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삶의 균형을 지키는 ‘중용’의 핵심은 마음의 여유에 있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즐거운 일은 모자라고 아쉬운 하루는 반복되는 듯 느껴진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부족한 마음의 여유를 다시 채울 수 있다면, 그래서 삶의 무게를 분산할 수 있다면 당신이 바라는 내일에 한 발짝 가까워질 수 있다.
“모두에게 주어진 일주일,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균형을 되찾는 공자와 장자의 35가지 지혜
이 책은 반복되는 월화수목금토일 동안 현대인들이 맞닥뜨리는 다양한 감정과 상황을 소개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부정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동양철학자들의 지혜를 빌려 35가지 꼭지로 실었다. 무기력한 월요일에는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자꾸만 늘어지는 화요일에는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지혜’를, 한 주의 가운데서 일과 사람에 치여 예민한 수요일에는 ‘현명하게 관계 맺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다가올 주말을 고대하는 목요일에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배움’을, 저녁부터 설레는 금요일에는 ‘들뜨더라도 덤덤할 줄 아는 차분함’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긍정의 토요일에는 ‘나를 이해하는 질문’을, 1분 1초가 아쉬운 일요일에는 ‘마무리의 미덕’을 이야기한다.
공자와 장자의 이야기를 함께 읽으면 삶의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 홀가분한 내일로 나아가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삶을 놀 듯이 살아가고자 했던 도가의 철학자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언덕과 산도 낮은 흙들이 쌓여서 높아진 것이고 강물도 여러 시냇물이 모여서 커진 것이다. 위대한 사람이란 모든 개인을 합쳐서 공을 이룬다.” 결국 인생이란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고, 그러한 삶이 위대한 것도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유가의 철학자 공자는 삶의 중용을 지키기 위해 네 가지를 끊었다고 전해진다. 첫째는 ‘사사로운 의견’이다. 자신의 의견 없이 살 수는 없으므로 이 말의 핵심은 사사로움을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된다. 둘째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는 ‘반드시 나처럼 해야 된다는 생각’과 통한다. 셋째는 ‘고집불통’의 태도다. 무조건 나와 다른 의견을 차단하는 고집에 주의하고 이견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는 ‘내가 아니면 안 될 것이란 생각’이다. 온 세상의 짐을 떠맡으려는 사람은 금세 지치고 만다. 현명한 사람은 내가 아닌 사람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줄 아는 사람이다.
저자는 두 철학자의 말에서 ‘융통성’의 중요성을 발견한다. 이 세상엔 꼭 그래야 하는 것도, 꼭 그러지 말아야 하는 것도 없다. 반드시 내가 해야 한다는 강박과 나는 절대 할 수 없을 거라는 의심이 당신을 괴롭히고 있다면 그때가 융통성을 발휘해야 할 순간이다. 단단하면서도 여유로운 삶은 중용을 지킬 수 있을 때 실현된다.
“나는 닮고 싶은 사람인가, 부끄러운 사람인가”
더 나은 인간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이 책의 저자는 철학을 만나기 전까지 싸움과 알코올 중독에 사로잡혀 방황하는 시기를 겪었다. 이후 신부가 되고 싶어 7년간 교구 두 곳과 수도회 두 곳에 지원했지만 몸에 큰 문신이 있다는 이유로 불합격했고, 필리핀 수도회에 갈 기회를 얻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출국이 무산되는 바람에 신부의 꿈은 좌절되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하늘이 나를 버렸다는 말이 저절로 이해되는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그랬던 그가 현재는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아들을 낳고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서예와 동양철학으로 마음을 수련했고 자신처럼 방황하는 이들을 위하여 청소년교육학과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으며 현재는 중독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사고뭉치 문제아에서 박사 과정생으로, 신부 지망생에서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빠가 된 것이다.
저자는 ‘나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사람다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게 찾아온 삶의 풍파가 남들보다 조금 높았을지언정 변화의 허들까지 높았던 것은 아니다. 그가 과오를 뉘우치고 새 삶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부끄러움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갈고닦고자 한 의지에 있었다. 동양철학에서는 ‘타고난 인성’을 바꿀 수는 없더라도 ‘후천적인 인품’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고 고인 물은 언젠간 썩는 것처럼 천성이 아무리 선해도 노력하지 않으면 그 마음은 유지될 수 없다. 그러므로 변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더 나은 인간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에 있다.
공자는 ‘중간쯤 이하 되는 사람에게는 심오한 진리를 말하면 안 된다’고 했으며 장자는 ‘함께 갈 수 없는 사람과는 어울리지 말아야 몸에 재난이 없다’고 말했다. 과연 나는 주변 사람에게 어떤 평가를 받는 사람인가. 함께 가고 싶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며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도 없다. 그럼에도 곁에 있는 소중한 이들에게 함께하고 싶은 존재가 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더 나은 인간으로 변화할 수 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삶이지만 결국 변화는 나 자신만이 일으킬 수 있다. 그 변화의 여정에 동양의 철학자들이 남긴 오래된 지혜가 앞을 밝혀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