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어떤 엄마와 할머니 밑에서 자랐기에 안반 도둑년 어미 속곳 같은 말을 그렇게 술술 염불 외듯 외며 살게 되었을까. 얼마나 자기 삶에 지독한 증오를 품었기에, 자신의 딸에게도, 그 딸의 딸들에게도 시시각각 경계하듯 그런 말들을 전염시키며 살았을까. 자신이 딸인 게, 자신이 딸을 낳은 게, 그 딸이 또 딸들을 낳은 게 그렇게 부끄럽고 두려웠던 것일까.
(권여선, 「안반」, 32쪽)
“고모는 지옥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상상해본 적이 있어?”
이원은 어이가 없어서 눈을 크게 굴렸다. 이열음이 성큼 다가와 “없어?” 하고 고쳐 물었다.
“누군들 왜 없겠어. 책에서도 보고, 영화로도 보고.”
“그치. 힘들면 ‘사는 게 지옥이다’라는 말도 하니깐. 만약에 ‘사는 게 지옥’이라는 빌딩이 있다 쳐봐. 그럼 난 일 층부터 팔십칠 층까지 한 층 한 층 걸어 올라가서 잠깐씩이라도 안을 보고 싶을 거 같아.” (기준영, 「신세계에서」, 45쪽)
맹희는 그 무해하게 외로운 세상 앞에서 때때로 무례하게 다정해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런 마음이 어떤 날에는 짐 같았고 어떤 날에는 힘 같았다. 버리고 싶었지만 빼앗기기는 싫었다. 맹희는 앞으로도 맹신과 망신 사이에서 여러 번 길을 잃을 것임을 예감했다. 많은 노래에 기대며. 많은 노래에 속으며. (김기태, 「롤링 선더 러브」, 94쪽)
그날 밤 꿈에 정현은 반려빚과 함께 산책을 나갔다. 목줄을 쥔 쪽이 반려빚이었던 것이 좀 다르긴 했지만 개와 산책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리라 생각했다. 정현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목이 말라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어져 반려빚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카페에 잠깐 들를까? 반려빚은 정현이 꽤 가엽다는 듯이, 그러나 목줄을 쥔 자로서 단호해야만 한다는 듯이 줄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집에 믹스커피 있잖아. (김지연, 「반려빚」, 107쪽)
오늘에서야 이세리를 떠나보내고, 자신은 끝내 돌아갈 수 없었던 중학교 스탠드에서부터 시작하겠다고 세리는 비장하게 말했다. 제 이름을 기억해 주세요, 저는 이세리입니다! 십 대 초반에 세리는 그 말을 어디에서나 외쳤다. 이제 세리는 자신을 잊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는 중이었다. (박민정, 「전교생의 사랑」, 154쪽)
잘 듣는다는 거요. 그 사람은 어떻게 잘 듣는 거예요? 고개를 끄덕이면서?
끄덕이기도 하고(애리 웃음). 모르겠다. 모르겠어요. 설명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듣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듣는 것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잘 듣고 잘 들으면서 필요할 때 그 사람을 바라보고 그리고 계속 듣는 거 같아요. 아니 아니다. 잘 모르겠어요. (박솔뫼, 「투오브어스」, 170쪽)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삼십 년 박수 인생에 이런 순간이 있었던가. 누구를 위해 살을 풀고, 명을 비는 것은 이제 중요치 않다. 명예도, 젊음도, 시기도, 반목도, 진짜와 가짜까지도.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 (성해나, 「혼모노」, 213쪽)
“하나 가져갈게요.” 중수가 상담 테이블 옆 화분에서 돌을 집어 호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저작권료 지불하라고 할까 봐 말 안 했는데 사실 우리끼리 해요.” 중수가 장식장에 놓인 단지를 보았다. “우리끼리 고통의 땅에서 돌을 가져오고 서로의 돌을 가져가요. 그러곤 이렇게 말하죠. ‘당신의 돌은 나에게 있습니다.’” 아직 고통을 품지 않은 산뜻한 돌이 중수의 호주머니에 실려 멀어졌다. (이미상, 「자갈 선생의 상담일지」, 241쪽)
철학자는 왜 육지 끝에서 멈추었을까?
자는 줄 알았던 시인이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추락하지 않으려고.
뒷자리의 소설가가 말짱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말해 살려고. (이주혜, 「이소 중입니다」, 264쪽)
밍밍이가 죽고 난 뒤 도대체 얼마 만에 느껴보는 작고 연약한 생명체의 온기인가. 숙희는 아기를 꼭 끌어안고 얼굴을 가볍게 부볐다. 숙희의 마음속에서 작은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기억이 다시 소용돌이치는 듯했다. 숙희가 사랑했던 그러나 잃어버린 온갖 것들에 대한 기억이. 다시 삶을 달라고, 다시 자기를 봐달라고. (전하영, 「숙희가 만든 실험영화」, 300쪽)
어머니에게만큼 나에게도 나만의 믿음이 있었는데, 그것은 어머니가 그리는 괜찮은 미래는 영영 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과거가 괜찮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 것처럼, 미래도 우리가 바라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낙관이 가능한 이유는 미래는 언제까지고 미래에 머물러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영수, 「미래의 조각」, 333쪽)
비참함. 그냥 슬픈 게 아니라 슬프고 또 참혹해. 나는 참혹해. 비참함이 꾸역꾸역 항아리를 터뜨릴 듯이 비어져 나오고 있어. 나는 밑 빠진 독을 등으로 막고 있는 두꺼비인 줄 알았는데, 여기저기 금이 간 사람에 불과했구나. 어디서부터 무엇을 주워 담아야 할까. 괜찮을 거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하나둘 내게 등을 돌리는 기분이 들었다.
(최미래, 「항아리를 머리에 쓴 여인」, 367쪽)